3억짜리 집 가진 65세 부부, 평생 월 86만원 수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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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26면

찬바람이 거세지면서 슬슬 1년치 투자 채점표를 받아들 때가 됐다. 반 토막 난 펀드는 이제 쳐다보기도 겁난다. 아파트 값도 잿빛으로 변한다. 이러다 노후를 제대로 준비할 수나 있을까. 이럴 땐 거꾸로 생각하면 ‘구원 밧줄’이 보일 수도 있다.

집값 하락기에 관심 끄는 주택연금

역(逆)모기지론도 그중 하나다. 한 달여 전 ‘노(老)테크’ 시장에선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역모기지론의 1000번째 가입자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경기도 양평에 사는 오창환(71)씨 부부였다. 자녀들이 결혼한 뒤 고향인 양평에 내려와 살게 된 오씨네는 4억원짜리 집을 밑천 삼아 월 115만원씩 받는다. 그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손자들에게 용돈도 주면서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역모기지론에 알쏭달쏭하는 사람도 많다. 풀어 쓰면 ‘주택연금’이라고도 불린다.

만 65세 이상이면서 1가구 1주택자로 9억원 아래인 주택을 가진 사람이 이를 담보로 잡히고 대출을 받는 형식이다. 달마다 연금을 탄 뒤 숨지면 주택을 팔아서 갚는다. 일반 모기지론은 아파트를 살 때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데 이와 반대 개념인지라 ‘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000번째 돌파’가 남다른 것은 주택연금이 도입된 지 1년2개월 만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상품이 나왔을 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아냥이 많았다. 집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구습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SUNDAY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노후 기본생계를 위해서는 월 220여만원, 골프와 해외여행 등으로 폼 잡고 살려면 월 400만원 가까운 돈이 필요한데 100만원 안팎의 주택연금은 든든한 방탄막으로 삼을 수 있다. 주택연금은 그동안 몇 차례 제도가 보완되고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많다. 주택금융공사의 박성제 팀장에게서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Q. 3억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65세 동갑내기 부부다. 주택연금으로 얼마나 혜택을 받을 수 있나.

A. 월 86만5000원을 받을 수 있다. 연령과 주택가격별로 얼마나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는 별도 표를 참고하면 된다. 지금 65세고 만약 86세까지 생존해서 20여 년간 연금을 받으면 본전을 뽑는다. 주택연금은 집값이 해마다 3.5%씩 오른다고 가정하는데, 86세가 되면 그동안 받은 혜택(연금+이자 총액)과 집을 팔았을 때 가격이 같아지는 ‘크로스 오버(cross over)’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 만약 100세까지 산다면 35년간 20억원을 대출받는 효과가 나는데 그때 집값은 10억원가량 된다. 즉 주택가치에 비해 10억원의 이익을 추가로 누리는 셈이다. 오래 살수록 이익이라는 뜻이다. ‘웰스케어 대신 헬스케어’라는 공식이 먹히는 상품이다.

Q. 만약 기존에 갚지 못한 주택담보대출이 남아 있어도 연금에 가입할 수 있나.

A. 있다. 주택연금의 골격은 크게 ‘종신형’과 ‘종신혼합형’의 2개로 나뉜다. 그중 혼합형은 연금대출 한도의 30%(최고 9000만원)를 정해 중간에 목돈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수시 인출 기능을 뒀다. 도박이나 사치성 오락에 쓰이는 돈이 아니면 의료비나 관혼상제비 등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데, 특히 지난 3월부터 기존 담보대출을 갚는 데도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Q. 부동산 값이 대세 하락에 접어들었다는 시각이 많다. 집 값이 떨어지면 연금액도 줄어 손해를 보게 되지는 않나.

A. 가장 많이 오해하는 내용이다. 집 값이 떨어져도 기존 계약은 유지된다. 월 연금 수령액도 변하지 않는다. 가입 대상자들은 대개 “부동산 상승기에 이용해야 담보로 잡히는 집값의 가치가 올라가 연금액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애초 연금액이 바뀌지 않는 점을 생각하면 하락기에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Q. 그렇다면 아파트 값이 오르면 손해 아닌가.

A. 물론 집값이 갑자기 몇 년 사이에 급등할 수도 있다. 이러면 연금액이 적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시인출 제도를 이용해 기존 연금을 갚아 버리고 상승한 주택 가격을 적용해 다시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도 있다. 일반 대출처럼 ‘갈아타기’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Q.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사를 가면 어떻게 되나. 집 값이 달라지게 되지 않나.

A. 주택연금의 기본 골격은 처음에 담보로 잡혔던 집을 팔아서 그동안 받았던 연금(이자 포함)을 갚는 방식이다. 이사도 마찬가지다. 연금의 대상 주택을 팔면 기존 연금 대출액을 상환해야 한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새로운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는데, 주택금융공사가 해당 아파트에 대해 설정한 저당권을 두 번째 주택으로 이전하도록 했다. 물론 이때 연금액은 새 집값에 따라 달라진다.

Q. 6억원 이하의 집이 대상이라는데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A. 주택연금은 소득세법 시행령의 ‘고가 주택’ 기준에 따라 대상자가 결정된다. 정부는 지난달 초 고가 주택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높였다. 주택연금 가입 대상자도 더 늘어나게 됐다. 집값은 ‘한국감정원 인터넷 시세→국민은행 인터넷시세→한국감정원 정식 감정평가액’의 순서대로 가격을 조회해 수치가 존재하는 것을 적용한다.

Q. 노후의 가장 큰 적은 인플레이션이다. 월 연금액이 10년, 20년 뒤에도 같다면 구매력이 줄어 생활이 어렵지 않나.

A. 그 단점을 보완하려고 얼마 전 ‘월 지급액 증가 옵션’을 새로 만들었다. 이 방식을 선택하면 해마다 3%씩 연금이 늘어난다. 예컨대 65세 부부가 표준형으로 가입하면 월 86만5000원씩 받지만 이 옵션을 고르면 가입 때는 64만원, 10년 후에는 86만원, 20년 후에는 116만원으로 금액이 늘어난다.

반대로 노년 초기에 소비를 많이 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월 지급액 감소 옵션’을 택할 수도 있다. 65세가 처음에는 110만원을 받다가 10년 후엔 81만원, 20년 뒤엔 60만원을 받는 시스템이다.

Q. 왜 이렇게 이용자가 적은가.

A. 광고와 홍보도 많이 하지만 한국에선 집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하다. 노인들이 ‘내 집은 내가 쓰고 가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가입자가 일찍 사망하면 연금 수령액보다 집값 처분액이 많기 때문에 손해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주택을 팔아서 생긴 돈에서 그동안 받은 혜택을 빼고 남는 것은 상속인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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