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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직장인 셋 중 한 명 도시락 들고 출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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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도쿄의 회사원 이시카와 도오루(石川徹·40)는 지난달 중순부터 도시락을 들고 출근한다. 예전엔 회사 근처 맛집을 찾아다니며 800~1200엔(1만1400~1만7000원) 정도의 점심을 사먹었지만 이젠 도시락으로 대체했다. 게다가 퇴근길에 동료와 꼬치구이 한두 개씩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술자리도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 월급이 줄거나 감원 걱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주식 폭락으로 손해를 본 데다 올 들어 고유가와 곡물가 상승으로 전기료·수도료·식료품값 등 물가가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일본 기업들의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면서 마음이 불안해져 절로 씀씀이가 위축됐다.

이시카와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5)도 한 끼 200엔(약 3000원)씩 하는 급식 대신 도시락을 갖고 다닌다”며 “주말에도 여행이나 외식보다는 집에서 가족과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게임을 하며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시카와처럼 불황과 고물가 위기를 맞은 일본 직장인들이 가장 먼저 줄인 항목은 외식비다. 설문조사 회사인 인티지가 이달 초 직장인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36%가 “집에서 도시락을 싸 들고 나온다”고 답했다. 퇴근길에 동료와의 술자리를 줄였다는 사람은 40%에 달했다.


◆“한 푼이라도 아낀다”=전국에 920여 개의 점포가 있는 홈센터 고모리에는 올가을 들어 절수 용품을 찾는 고객이 많아졌다. 화장실 절수기는 지난달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0% 이상 증가했다. 목욕물을 세탁기로 옮기는 펌프도 20% 가까이 많이 팔려나갔다.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전동자전거 판매는 오히려 늘었다. 교통비를 절약하겠다는 회사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이에가 운영하는 서점 ‘아시네’는 17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전국 95개 점포에서 절약에 관한 책을 모은 특별전시회 ‘생활응원-각오하고 생활하는 책의 가르침’을 연다. 소비자들의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모아 제공한다는 취지다. 생활 속에서 절약할 수 있는 방법 외에도 주택 구입과 재테크·건강 등에 관한 책 100권을 뽑아 전시할 계획이다.

인터넷에서 가격을 비교한 후 싼 제품을 구입하는 주부들이 늘면서 최근엔 인터넷 수퍼마켓이 주목받고 있다. 가격은 일반 수퍼와 같거나 싼 데다 무료 배송이고, 장을 보면서 쓸데없는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2000년부터 인터넷 수퍼를 운영하고 있는 세이유(西友)의 회원은 15만 명. 최근 1년 새 30% 이상 증가했다. 또 다른 업체인 이토요카도는 2월 이후 매달 1만 명씩 회원이 증가해 지난달 말에는 25만 명으로 불었다.

일본인들의 ‘짠돌이 정신’은 명품점들이 들어선 도쿄 긴자의 풍경까지 바꿔놓았다. 구찌·프라다·불가리 등 명품매장들은 한산한 데 비해 유니클로와 자라·H&M 등 중저가 패션매장은 연일 손님들로 붐빈다. 9월 긴자점을 시작으로 이달 초 하라주쿠(原宿)에 2호점을 낸 H&M은 패션성이 뛰어난 다양한 제품을 저가에 판다는 전략으로 일본 고객들을 끌어 모았다. 2000엔대 긴팔 스웨터, 4000엔대 바지 등 중저가 제품이 주류다. 30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다.

◆“생활지원비도 저축”=일 정부는 최근 경기회복 대책으로 국민당 평균 1만2000엔(약 17만원)씩 생활지원금을 지급키로 확정했다. 18세 이하 미성년자와 65세 이상 고령자는 2만 엔씩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저축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교도(共同)통신이 정부의 생활지원금 활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평소 사고 싶었던 비싼 물건이나 오락비로 쓰겠다”는 사람은 16.9%에 불과했다. 반면 “생활비에 보태 쓰거나 저축하겠다”는 사람은 80%에 달해 경기활성화라는 정부의 당초 취지가 살려질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부유층도 소비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아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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