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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왜 오바마에게 열광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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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렇지만 유럽에서 여전히 흑인 대통령이나 총리의 탄생을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흑인 정치인에 대한 유럽인의 열광은 다소 이상하게 느껴진다.

유럽인은 오랫동안 미국 흑인 스타에게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다. 흑인이 투표할 수 없고 미국의 몇몇 지역에서는 백인과 화장실도 함께 쓸 수 없던 시절, 파리와 베를린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조세핀 베이커를 떠올려 보자. 파리와 코펜하겐, 그리고 암스테르담은 뿌리 깊은 인종주의의 피난처를 찾았던 미국 흑인 음악가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다른 예술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에는 흑인이 많지 않았던 만큼 미국 흑인 스타를 추앙하기는 쉬웠을 것이다. 유럽인은 이런 점에서 미국인에게 우월감을 느꼈다. 인종적 편견이 없다는 점에서 우쭐할 수 있었다.

유럽인이 오바마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미국인 이상의 무엇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쟁 영웅인 매케인과 달리 오바마는 세계 시민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케냐인이어서 그는 제3 세계 해방운동과 관련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는 국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쉬웠다. 오바마가 7월 독일 베를린의 티어가르텐 공원에서 열광하는 20만 명의 독일인 앞에서 연설할 때 실제로 미국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 등 퇴락한 공업지역 등을 포함한 국내 지지율은 떨어졌다. 그는 위험할 만큼 유럽인과 닮아 있었다. 때문에 유럽인은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유럽인이 오바마에게 열광하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좀 더 복잡하다. 자유주의자들은 가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의 암울한 미국에 대해 깊은 환멸을 나타냈다. 그들이 희망의 등대로 여겼던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모한 전쟁과 고문, 맹목적인 애국주의와 지나친 정치적 우쭐함으로 희망없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미국의 불행을 고소하게 여기는 듯한 투로 환멸을 표현했다. 오랫동안 유럽과 아시아·아프리카를 자신의 그늘 아래 두고 우쭐대던 큰 나라가 마침내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중국·러시아·인도의 경제적 부상과 중동에서 무너진 미국의 모습을 보는 것은 미국의 패권이 더 이상 가치없다는 믿음을 가능케 했다. 다극화된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보다 더 선택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유럽인이 진정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우월한 힘에 행복해 할까. 자신만만하고 과장된 미국의 패권이 사라지는 가운데도 여전히 민주 세계에서는 미국의 넓은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며 마음은 더 편했던 그때로 돌아가고픈 약간의 바람이 있다.

이 또한 착각이다. 마셜 플랜과 베를린 공수작전, 쿠바 미사일 사태 이후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유럽에서의 아메리칸 드림이 벌써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바마에 대한 추종은 그것을 되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오바마의 당선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생각할 수 없던 일들이 여전히 미국에서는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것이 계속되는 한 오랫동안 서방 세계의 1인자였던 미국은 자유의 수호자로서 존경받을 것이다. 유럽인은 중국의 부상을 두렵게 여기며 러시아와의 타협점을 찾기 희망했지만 미국의 공화당과 함께라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여겼다. 유럽인은 이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버락 오바마의 당선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안 부르마 미국 바드 칼리지 교수
정리=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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