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국보전감상>자기-전통미 원형 담은 분청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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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려는.청자', 조선 하면.백자'를 떠올리지만 조선전기 도자기를 이야기할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분청사기'다.
조선 전기는 한국미의 원형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일컬어지는분청사기와 조선의 통치이념이었던 유교가 녹아있는 백자 가 공존하면서 다양하게 발전한 시기인 것이다.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전기국보전'에는 이러한 조선초 도자문화의 양대산맥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회화작품들에 곧바로 이어지는 분청사기는 회청색의 태토 위에 흰색의 백토를 발라 장식한 자기를 말한다.
백토를 발랐다는 것외에 이전의 상감청자와 큰 차이는 없다.다만 실질적인 것을 중시했던 조선인만큼 소박하면서도 실용적인 그릇을 대 량 생산하게 되면서 문양이 간략해지고 빛깔도 떨어지게된 것이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분청사기상감어룡문매병(粉靑沙器象嵌魚龍文梅甁)'을 보면 고려 상감청자와 비슷한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15세기 전반에는 상감과 함께 인화기법의 분청사기가 중심을 이루었다.자기가 대중화되면서 문양을 하나하나 새길 수 없게되자 도장으로 눌러 찍는 인화분청사기가 유행한 것이다.점이 전체에 걸쳐 이어져 현대적 감각을 띠는.분청사기인화승 렴문병(粉靑沙器印花繩簾文甁)'이 대표적인 예다.
15세기 후반으로 가면 철화(鐵畵).조화(彫花).박지(剝地)등 다양한 기법의 분청사기가 모습을 드러낸다..분청사기철화초화문병(粉靑沙器鐵畵草花文甁)'은 분청자에 산화철로 그림을 그린 것으로 이같은 기법은 주로 계룡산이 있는 공주에서 많이 사용됐다.이 작품에서도 보이듯 철화문은 대개 흑색이어서 마치 한폭의동양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선으로 모양을 그려넣는 조화분청사기의 대표적 작품은.분청사기조화쌍어문편병(粉靑沙器彫花雙魚文扁甁)'으로 두마리의 물고기가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한다.박지는 문양을 새기지 않은 부분을 모두 깎아 선명한 대비를 이루도록 하는 기법을 말한 다.
16세기에 들어서면 귀얄.덤벙같은 재미있는 용어가 붙은 분청자가 등장한다.오늘날로 치면 페인트붓처럼 생긴 귀얄에 백토를 적셔 분청자의 겉면 전체에 바르는 것이 귀얄분청자고 아예 백토물에 덤벙 담구어 만든 것이 덤벙분청자다..분청사 기귀얄문태호'에서 보이듯이 귀얄분청자는 겉이 하얗게 변하면서 붓자국이 나타나 운동감을 띤다.
백자를 선호했던 조선전기에 이처럼 분청사기가 이어졌던 것은 어찌된 일일까.생산비가 많이 드는 백토의 사용이 제한된 상황에서 백자처럼 보이게하기 위해 백토분장을 한 것이다.한마디로 결국 백자로 가는 과정인 셈이다.
조선 초기부터 분청사기가 사라진 임진왜란 전후를 거쳐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자기로 자리를 굳힌 백자는 철분없는 고령토로 형태를 만들고 이에 유약을 발라 구워낸 것이다.조선 전기에는 아무 문양도 없는 순백자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靑華白瓷),산화철로 무늬를 그리는 철화백자(鐵畵白瓷)도 함께 보인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특징인 탓에 백자는 당초 문양이 배제되었다..백자호(白瓷壺)'등의 작품에 나타난 티없는 유색에서 조선전기 백자의 품격을 살펴볼 수 있다.
왕실에서 즐겨 쓴 화려한 청화백자들과 함께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선 하나로 유연한 백자의 형태와 조화를 이루는.백자철화끈무늬병(白瓷鐵畵垂紐文甁)'도 놓쳐서는 안될 명품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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