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질질 끄는 외환은행 재판, 검찰이 더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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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법정에서 법원과 검찰이 충돌하는 바람에 재판이 파행을 겪었다. 그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 사건 공판에서 재판부가 검찰의 추가 증인신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에 반발한 간여 검사 두 명 중 한 명은 자리를 박차고 퇴정해 버렸고 한 명은 휴정 때 법정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담당 재판부는 검사의 의견 진술(구형) 없이 최후 변론과 피고인의 최후 진술을 듣고 심리를 종결했다.

법원은 검찰에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퇴정한 것이므로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반면 검찰은 “검사가 빠진 상태에서 변론을 종결한 것은 재판 말미에 사실과 법률 적용에 대해 검사의 의견을 진술토록 한 형사소송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검사가 재판 진행에 불만을 품고 법정을 박차고 나간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검사는 국가기관이자 공익의 대변자로서 감정보다는 냉철한 이성과 엄정한 수사 결과물로 유죄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2006년 검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법원과 검찰이 충돌했다. 검찰이 유회원 론스타 코리아 대표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네 번 기각된 것을 비롯해 법원에서 12차례나 체포·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외환은행 사건은 이후 22개월 동안 86차례나 공판이 진행됐다.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한 사람만도 31명에 이른다. 그런 사이 녹초가 된 것은 피고인들과 증인들이다. 2년 가까운 장기간의 재판에 따른 심적·경제적 부담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신속한 진실 규명을 통해 당사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소된 지 2년이 다 되도록 1심조차 마치지 못했다. 구형을 안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검찰의 안하무인의 자세가 문제다. 법원도 빨리 재판을 마무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