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보호무역은 역사의 후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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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그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만나 경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는 소식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GM을 비롯한 빅3에 대해 긴급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은 그 대신 자유무역협정(FTA)을 지지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현실이 다급한 것은 사실이다. 빅3의 종사자는 25만 명이고 협력업체까지 합하면 400만 명에 이른다. 빅3의 파산은 공황적 타격을 몰고 올 수 있다. 오바마 당선인이 “자동차산업은 미국 제조업의 등뼈”라며 GM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위기 때마다 보호무역주의가 출현했다는 역사적 경험이 마음에 걸린다. 오바마 당선인 진영에서 국내적 시각만 강조하는 정책이 자꾸 흘러나오는 것도 걱정스럽다. 물론 빅3에 수백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할 수는 있다. 미 정부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하지만 미 상무부는 2003년 한국 정부가 산업은행 등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했다며 하이닉스 반도체에 44.29%의 상계관세를 부과한 적이 있다. 구제금융 투입은 그보다 훨씬 노골적인 정부 지원이다. 미 정부가 국제적으로 두 조치의 차이점을 어떻게 설득할지 궁금하다.

전 세계 경제가 불안할수록 열린 시각이 절실하다. 보호무역주의는 일시적인 진통제에 불과하다. 결국은 자국 상품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전 세계를 궁핍하게 만드는 저주로 돌아올 뿐이다. 지금 세계는 G20을 통해 경제위기에 단합하고 있다. 금융위기는 글로벌 협력에 대한 필요성을 새롭게 인식시켰다. 지난 20년간 글로벌 공조와 자유무역을 주도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자유무역은 인플레 없는 최고의 경기 부양책이라는 미국의 설득이 통했다. 그 결과 세계무역기구(WTO)가 탄생했고 여러 나라들이 FTA를 맺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결코 자유무역으로 인해 일어난 게 아니다. 잘못된 금융 시스템과 거품 붕괴가 초래한 위기다. 따라서 보호무역주의는 위기의 치유책이 아니다.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다. 더구나 한국은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1997년 미국 수퍼 301조의 우선협상 대상국으로 지정된 뒤 외환위기를 맞았다. 따라서 누구보다 오바마 당선인이 대선 공약과 현실을 절충하면서 신중한 접근을 해주길 기대한다. 과도한 통상마찰이나 경제적 고립은 국가 이익에 전혀 보탬이 안 된다. 보호무역주의는 정답이 아니다. 역사의 후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