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家閥>5.리콴유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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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청렴독재자'.싱가포르 건설의 대부'.수에즈운하 동쪽의 영어권에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동양정신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논객(論客)'….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은 화려하면서도 다양하다.그가 일궈낸 정치.경제적 성공에 대해서는 찬양이 주류지만 때로는 거센 비의(非議)가 따라붙기도 한다.
65년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한 싱가포르를 불과 20여년만에 동남아 최대 부국으로 올려놓은 리콴유(李光耀)전임 총리.
그는 동양의 전통적인 가치관 위에 서양식의 합리주의를 절묘하게 접합시킨 정치가다.그러나 경제의 고속성장을 주도하면서 청렴한 사회를 꿈꿨던 그도 동양사회의 혈연적 특성에서 크게 자유로울 수 없다.당대의 성공이 후대로 연결되는.가벌의 형성'이라는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23년 싱가포르에서 출생한 李는 하카(客家)계의 중국인으로서전통적인 가부장적 권위가 매우 강한 인물이다.50년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노동운동에참여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든 것은 54년 영국유학생이 중심이 된 인민행동당(PAP)을 결성하면서부터다.인민행동당은 현재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적 위치의 싱가포르 집권여당이다. 李는 현재 총리자문역의 직함을 갖고 있다.
또한 인민행동당의 창시자면서 정신적인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고촉통(吳作棟)총리가 행정수반으로 싱가포르를 대표하고 있지만그 뒤에는 李가 실질적인 지도자로 버티고 있다는 점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李는 50년 같은 케임브리지 유학생으로서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콰곡추(柯玉芝)여사와 결혼했다.李는 슬하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李가 이룬 성공과 명예를 이어갈 후계자는 그의 두 아들이다.
장남 셴룽(顯龍)은 52년에 태어나 부모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유학,케임브리지대를 졸업했다.그는 아시아 여타 유력 가벌의 후계자다운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다.30세에 이미 싱가포르 육군준장을 달았고 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거쳐 상무 장관을 역임하면서 아버지를 이을 후계자 수업을 모두 마쳤다.따라서 그의 뒤에는 아버지의 후광을 업은.벼락 출세자'라는 비아냥이 뒤따르기도한다. 그는 지난 90년 부친의 은퇴에 이어 吳가 총리에 오르면서 제1부총리직을 이어받았다.총리 유고시 그 직무를 대신하게되는 실질적인 2인자 자리다.吳총리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의 후계설을 몇차례 흘림으로써 부자(父子)2대에 걸친 총 리가 곧출현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둘째 아들 셴양(顯揚) 또한.잘 나가는'후계자다.그도 부친처럼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부친의 모교인 케임브리지대를 역시 수석으로 졸업한데다 89년 미 스탠퍼드대도 수석으로 마쳤기때문이다.
셴양 또한 형이 거친 후계자 코스를 거쳤다.싱가포르 육군준장에서 출발,전역전까지 연합작전 기획국장을 맡았다.
그는 37세에 싱가포르 최대 기업인 싱가포르 텔레콤 사장으로성큼 뛰어올랐으며 최근에는 정계 입문설까지 나돌고 있다.
이 때문에 리콴유 자신이 한때 제창,많은 비난을 불러일으켰던.천재 유전론'식의 극단적인 엘리트주의는 결국 본인과 그 아들들의 화려한 이력을 염두에 두고 제기됐던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빚어지고 있는 상태다.
어쨌든 아버지가 실질적인 싱가포르 정치 지도자인데다 두 아들이 정.재계를 휘어잡음으로써 리콴유 가문은 싱가포르 최대의 가벌로 떠오른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최근들어 콘도미니엄 특혜분양을 둘러싸고 리콴유와 셴룽 부자가 스캔들에 휘말리 면서 李씨 가벌의 순조로운 항진(航進)이 반드시 보장된 상태는 아닐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대두하고 있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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