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미술관] 12m ‘그림 터널’ 속에 우정을 색칠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서울 응암동 알로이시오 초등학교는 강당과 학교 건물 사이에 갤러리를 마련했다. 6일 오전 이 학교 학생들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터널에서 놀고 있다. [김태성 기자]


이런 알로이시오 초등학교가 이달 1일 작지만 귀한 선물을 받았다. 서울시가 예산 1억원을 지원해 학교 교정에 문화예술의 향취를 불어넣는 ‘학교 갤러리 사업’이 석 달간의 작업 끝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사업을 맡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민선주 교수와 그가 지도하는 도시문화정보연구실 소속 제자들은 학교와 지역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문턱에 주목했다. 동네 주민들의 자유로운 학교 왕래를 막는 높은 담장 등 위압적인 학교 건물이 주민과 학생들 사이의 마음의 벽을 키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민 교수는 우선 후문 기둥과 경비실을 어른 가슴 높이까지 나무 재질의 마감재로 감싸 보기 흉한 콘크리트를 가렸다. 서 너 명이 앉을 수 있는 나무 평상을 설치한 후 비를 막을 수 있도록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의 투명한 지붕을 씌웠다. 학교를 통과해야만 도달하는 저소득층 의료시설인 도티병원을 찾는 주민이 중간에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강당과 학교 건물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는 사각형·오각형 형태의 나무 뼈대를 듬성듬성 세운 후 역시 투명 지붕을 씌워 11~12m 길이의 터널을 만들었다. 바닥에는 나무를 깔고 터널의 한쪽 벽면에는 장래 희망을 그린 아이들의 그림 100여 장을 붙여 전시했다.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친구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소박한 미술관인 셈이다. 준공 행사에는 지역주민들이 초청됐다. 주민대표의 축사도 행사 순서로 끼워넣었다. 동네 잔치로 꾸미자는 생각에서다.

6일 오전 강당 앞 미술관. 쉬는 시간임에도 아이들은 앞다퉈 몰려와 장난 치며 뛰어 놀거나 친구들의 그림을 감상했다. 2년생 박석현(9)군은 “진짜 미술관 같다. 이런 곳이 학교에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년생 김예지(9)양은 “동네 아저씨·아줌마들이 우리 그림을 보러 와 기분이 좋다.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2학년 1반 담임인 류인호 선생은 “등하교 때나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 때를 가리지 않고 아이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소개했다.

알로이시오 초등학교는 학교갤러리 사업 외에도 ‘녹색희망 프로젝트’ ‘학교 공원화 사업’ 등의 지원 대상이다. 산림청에서 녹색복권 수익 14억원을 지원받는 녹색희망 프로젝트는 8400㎡ 넓이의 맨땅 운동장을 작은 숲으로 바꾸는 사업이다. 다음 달 끝난다. 후문 근처 버려지다시피 방치돼 있던 2500㎡ 부지를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녹색 공간으로 바꾸는 서울시의 학교 공원화 사업도 차츰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학교를 운영하는 마리아수녀회의 정말지 수녀는 “우리 학교가 주민들이 스스럼없이 즐겨 찾는 동네의 명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