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의 세상 탐사] 오바마의 ‘적과의 동침’ 리더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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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호 02면

버락 오바마는 한국을 찾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을 경험했다. 한국 교민들을 접촉하고 관찰했다. 한국인에 대한 그의 시각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그는 1985년(24세) 시카고의 사우스 사이드로 갔다. 지역사회 운동가로 3년쯤 활동했다. 주 무대는 그곳 앨트겔드 가든(Altgeld Garden). 흑인 밀집 빈민가다.

그는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 그때의 기억을 넣었다. 한국 교민 관련 대목이 몇 군데 있다. 흑인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외부인(한국인·아랍인)들이 장사로 돈을 벌고도 우리들을 업신여긴다. 한국인들은 온 가족이 하루 16시간, 일주일 7일 일한다. 흑인들은 엄두를 못 낸다.”

나는 지난 6월 사우스 사이드를 찾았다. 오바마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추적했다. 교민·흑인·시민운동가를 만났다. 그들의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오바마가 자란 하와이는 다인종·다문화 사회다. 10대의 오바마는 한국인 2세들을 만나 김치와 불고기를 경험했다. 소수 인종에 대한 오바마의 통찰력과 학습 능력은 특출하다.”

“그의 자서전에 한국인에 대한 기억은 이중적이다. 긍정과 부정, 부러움과 질시가 엇갈린다. 긍정적 면은 근면, 가족의 단합과 헌신이다. 오바마는 한국인 세탁소의 단골손님이다. 주(州)상원의원 때 태권도(5급)를 배웠다. 그러나 그의 기억 한쪽에 한국인은 이기적이라는 부정적 시선이 깔려 있다. 자기들끼리만 뭉치고 지역공동체에는 무관심하다는 인식도 담겨 있다.”

오바마 당선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못마땅해한다. “결함(flaws)이 많다.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부문은 불만의 핵심이다. 그 불신에는 20대 중반에 형성된 한국인에 대한 미묘한 시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흑인 지역에서 성공한 한국인의 억척, 그로 인한 흑인 빈민들의 상실감이 그런 감정 형성에 작용했을 수 있다.

한국이 미국에 파는 자동차는 연간 70만 대 수준. 미국은 한국에 5000대쯤 수출한다. 격차의 책임은 미국이다. 한국 소비자를 잡지 못한다. 독일·일본 차에 밀린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역조는 오직 미국의 잘못”이라고 못 박아선 곤란하다. 그런 자세는 미국에 불쾌한 자극이다.

그의 변화 메시지는 화려하고 감성적이다. 하지만 실천은 영리하고 현실적이다. 그는 사회운동가 때 ‘적과 함께 일하고 성취’하는 윈-윈(win-win) 방식을 배웠다고 한다. 오바마식 ‘적과의 동침’ 리더십이다. 오바마의 승용차는 크라이슬러 300C다. 동종의 독일·일본 차에 비해 싸다. 미국 차를 의전·출장용으로 사줄 전략적 제스처가 필요하다. 선제적 성의 표시다. 상대방의 어려움을 알아주는 게 협상술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은 위기다. 현대차·삼성전자(미국 휴대전화 시장 1위)·LG 등이 나서야 한다.

오바마는 변화 리더십을 한반도에 적용할 것이다. 그의 유세 현장에서 나는 북한 문제를 시사하는 두 가지 말을 들었다. “친구보다 적을 만나길 원한다.” “한쪽의 불의(injustice)는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 북한과의 직접 대화, 인권 문제에 관한 얘기다. 그는 김정일과 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 상대, 한국 배척)의 유혹을 받을 것이다. 한국 내 친북좌파도 근본적 정책 변화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설픈 착각이다.

인권은 오바마의 정체성이다. 그가 중시하는 소프트 파워의 핵심 가치다. 그는 북한 인권 참상을 외면하지 않는다. 인권은 김정일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다. 오바마는 북한에 까다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 대북 접근에 유연함과 강경함이 교차할 것이다. 그는 부시만큼 북한의 핵 제거에도 적극적이다.

한국의 다수 젊은 세대는 부시의 오만을 싫어했다. 오바마는 한국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섰다. 이명박 정권도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오바마의 등장은 한·미관계를 세련되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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