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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귀족의 그늘 벗어나자 교향곡은 황제가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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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부다페스트에서 자신의 오라토리오를 지휘하고 있는 리스트. 19세기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그림은 당시 스케치를 모사한 동판화 . [마티 제공]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
최은규 지음, 마티, 245쪽, 1만5000원

교향곡의 역사를 설명한 이 책은 사실 ‘직업인’이라는 틀로 해석한 작곡가들에 관한 것이다.

‘교향악의 아버지’ 하이든(1732∼1809)은 1790년대에 런던에서 처음으로 자유로운 콘서트를 열었다. ‘모시고’ 살던 후원자 귀족 가문의 대(代)가 바뀌면서 잠시 독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마침 런던에서는 공공 연주회가 활발히 열리고 있었다. 이때 만든 12곡의 ‘런던 교향곡’에는 그의 역량이 남김없이 발휘돼있다. 기존의 귀족적인 취향에서 벗어나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획기적인 음악 기법을 총동원했다. 이어 부르주아의 탄생과 함께 프리랜서 음악가로의 자유를 만끽한 모차르트는 대곡을 쏟아냈다. 이들이 만든 교향곡은 큰 규모와 완성된 음악적 형식으로 대중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18세기 이전 교향곡의 위치는 오페라 시작 전 ‘맛보기’에 불과했다. 음악이 태어난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음악에 밀렸다. 종교음악이 주류를 이루는 음악계에서 교회·궁정의 음악적 입맛을 돋궈주는 재료에 머물렀던 것이다.

이후 교향곡이 클래식 음악의 뼈대 장르로 자리 잡기까지에는 작곡가들의 신분 변화와 사회 변동이 있었다. 작곡가들은 후원자의 그늘에서 벗어나 순수 음악의 완성된 모습을 찾아나섰고, 각종 악기가 총 동원된 형태의 교향곡이 클래식 음악의 황제의 지휘를 획득하게 된다. 음악이 종교 음악에서 점차 분리되면서 공공 연주회장에 어울리는 교향곡이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책은 이렇게 베토벤·브람스·말러로 넘어간다.

저자가 교향악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교향악의 대중화에 몰두해온 개인적인 이력이 한몫 했다. 그는 음악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취직’했다. 1991년 1월 부천시향의 바이올린 단원이 되고, 2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을 나와 유학을 다녀오는 것이 연주자들의 정해진 길이던 때였다.

하지만 그의 꿈은 처음부터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다. 다른 악기와, 다른 사람과 함께 소리 낼 때의 재미 때문이다. KBS 교향악단의 악장이었던 김의명 교수에게 배운 영향도 있었다.

오케스트라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이 연주 외의 또 다른 능력이다. 음악회를 기획해 청중에게 끌어다 놓고, 어려운 음악을 쉽게 풀어놓는 것이 그의 특기다. 그는 부천시향 지휘자 임헌정과 함께 작곡가 말러 붐을 일으키는 데 큰 몫을 했다. 본 공연 전의 ‘프렐류드 콘서트’에서 기획·해설을 맡고, ‘말러 클럽’ LD 감상회 등을 이끌었다. 거대한 음향과 실험적 내용 때문에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거의 연주되지 않았던 말러의 부활에는 부천시향의 공이 크다.

2004년에는 연주를 그만두고 아예 부천시향의 기획팀장으로 변신했다. 현재는 오케스트라를 나와 음악칼럼니스트·해설자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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