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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42.대한전선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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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치와는 담을 쌓고 부동산 투자도 하지 말자.” 50~70년대 재계를 풍미하며 한때 재계서열 4위까지 올랐던 대한전선 경영진들이 오랜 기업활동을 하며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는 경영철학이다.이같은 경영철학은 창업주인 고(故) 설경동(薛卿東.74년 작고)회장의 뼈아픈 경험에서 비롯됐 다.대한방직.대한전선.
대한제당등의 굵직한 기업을 통해 그룹의 사세가 한창 뻗어나가던50년대말 그는 자유당 재정부장을 맡는등 정치에 참여했다.그러나 4.19와 5.16등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며 경영일선에서 밀려나고 부동산을 몰수당하 고 만다.
***“정치와는 담을 쌓아라” 대한은 창업주가 작고한 74년장남인 설원식(薛元植)씨와 2남인 설원철(薛元鐵)씨가 대한방직을,3남 설원량(薛元亮)씨와 4남 설원봉(薛元鳳)씨는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공동으로 맡게 된다.소그룹화인 셈이다.78년에는설원봉씨가 대한 제당을 맡아 독립한다.이처럼 그룹분할이 이뤄져독립적으로 기업경영을 하지만 薛씨 2세들은 모두.대한'상호를 사용한다.
올해 대한전선의 재계랭킹은 44위,화려했던 옛날과는 차이가 난다.하지만 대한전선은 8개 계열사가 전선.알루미늄.스테인리스등 산업기초 원자재를 생산함으로써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공헌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70년대 가전사업에 손을 대 처음으로 소비재 사업에 나섰지만79년 오일쇼크에 따른 경기부진으로 가전부문을 대우그룹으로 넘기면서 외길 경영으로 복귀했다.
74년 경영권을 이어받은 설원량(54)회장은 취임직후“전선과금속산업으로 국가에 보답하자”며.한우물 경영'을 재차 선언했다. 薛회장이 내건 경영방침은▶외형보다 경상이익 우선▶짜임새 있는 사업구조▶쓸때 쓰더라도 아낄 때는 휴지 하나도 낭비하지 않는 내실경영.薛회장은 70년대까지만 해도 형들이 운영하던 대한방직에 못미쳤던 대한전선의 매출을 10여년만인 80 년대 중반에는 추월시키는 경영수완을 보여주기도 했다.
薛회장은 학교졸업(경기고.서울상대)과 함께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67년 대한전선 총무부장,68년 대한제당 상무,72년대한전선과 대한제당 사장등 전선과 제당을 두루 거치면서 선친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薛회장은 자신과 그룹이 외부에 소개되는 것을 꺼린다.최근 세계 최대 높이의 초고압케이블 제조 타워를 준공하고도 대외홍보는 일절 하지 않았다.그는“우리 할 일만묵묵히 잘하면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다 알아준다”고 말한다.
그는 또 근검정신의 생활화를 강조한다.외부인사와 특별한 약속이 없는한 서울중구회현동 본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사내에서의 각종 서류는 꼭 이면지를 사용토록 한다.薛회장은 77년 초고압케이블,94년 스테인리스사업,95년 알루 미늄 압연사업에 잇따라 진출해 그룹 사세를 키웠다.당시 사내외에서는.경제성이 없다'며 반대했지만 이들 사업은 때마침 추진된 국가 통신및 전력 프로젝트에 힘입어 지금은 대한전선의 주력사업으로 자리잡았다. 대한전선그룹은 8개의 계열사가 있으나 모기업인 대한전선을 중심으로 기업활동이 이뤄진다.중요한 일이 있을 경우 비공식 모임인.5인위원회'가 핵심 의사결정기구로 작용한다.5인위원회 멤버는 薛회장을 비롯해 유채준(兪彩.61)사장,이청룡 (李淸龍.54)부사장,김광배(金光培.53)부사장,이호일(李浩一.52)전무.위원회에서는 신규사업 추진등 그룹의 주요사안을 논의하며 경기고.서울대로 이어지는 이른바.SK'학맥이 주류를 이룬다. 회장과 두 부사장은 SK 동기동창,사장과 두 부사장은 서울대 전기과 선후배 사이다.이들중 서울대 전기과 출신이 3명이나된다. 공채1기인 유채준 사장은 그룹이 내세우는 대표적 전문경영인.90년이후 네번째 사장직을 연임할 정도로 회 장의 신임이두텁다.주력사업인 전선부문을 총괄한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큰 것을 놓친다”는 점을 늘 강조한다. 李부사장과 金부사장은 해외사업과 국내사업을 나누어 맡고 있다. 李부사장은 해외사업 불모지였던 국내 전선 수출의 개척자이자 산 증인으로 알려진 인물.국내업계 최초로 93년 말레이시아에 통신케이블을 수출한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 등 중동으로 시장을 넓혔다.해외출장때도 업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직원들과 대책회의를 가질 정도로 일 욕심이 많다.
金부사장은 엄격한 스타일의 회장및 사장과 달리 소탈한 성격의소유자.봄.가을이면 본사 직원들을 데리고 등산도 가고,등산뒤 맥주집에도 즐겨 간다.
최근 그룹이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꼽는 정보통신과 케이블TV시스템 사업도 맡고 있다.
그룹 관리담당인 李전무는 30여년을 대한전선에서 근무하면서 관리와 생산분야를 두루 거쳐 차세대 주자로 꼽힌다.수치감각이 탁월하다는 평이다.
대한전선 그룹은 지난해 1조3천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대부분이대한전선(1조1천억원) 실적이 다.83년 가전사업 처분후 계열사들을 정리하며 외형성장은 주춤해졌으나 재무구조는 오히려 탄탄해졌다는 평이다.
특히 80년대말 전선경기의 호조와 지난해부터 신규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실적이 호전돼 95년에는 3백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薛회장 특유의 내실경영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電線수출의 산증인으로 대한전선그룹은.한우물 경영'을 유지하되 전선및 소재산업과 관련이 있는 분야에는 2000년까지 적극 진출한다는 사업다각화 전략을 갖고 있다.이미 이같은 원칙에 따라 신소재 사업과 정보통신 사업에 뛰어들었다.그러나 회사안에서는 지나치 게 높은 대한전선의 비중을 낮추기 위해서는 사업구조를 더 다각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세 이양과정과 가전사업의 실패로 성장이 주춤했던 대한전선이21세기를 겨냥한 신규사업으로 옛 명성을 어떻게 되찾을지 관심거리다. <이원호 기자><다음은 동국무역그룹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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