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空士 첫 여생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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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29년은 여성비행사들에겐 잊혀질 수 없는 해다.세계 최초의 여류비행사며 시인이었던 미국의 에밀리어 이어하트가 대서양상공을 비행하던중 행방불명됐고,우리나라에서도 최초의 여류비행사로꼽히는 박경원이 비행중 추락사망했기 때문이다.
세계 문학사상 처음으로 항공소설을 발표했던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가 아르헨티나의 우편항공회사 영업부장으로 취임해 걸작.야간비행'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해였다.생텍쥐페리는 일련의 항공소설에서 하늘을 나는 일,곧 비행기를 조종 하는 일이 상반된 양면성을 갖는다고 술회한다.하나는 폭풍우와 어둠 등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과 맞싸워야 하는 위험한 일이라는 것,다른 하나는 다채롭고 낭만적이며 섬세한 자연을 몸과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조종석에 앉기만 하면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길인줄 알면서도 기수를 하늘로 향하고 끝없이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비행기 조종이 위험한 일이라는 측면에서는 남성의 전유물인듯 싶지만,로맨틱한 일이기도 하다는 측면에선 여성에게도 매우 매력적일 것이다.정부수립 이듬해인 49년 당시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지시로 공군에서 여자비행사 훈련생을 모집했을 때 무려 8천2백여명이 지원했던 것도 파일럿에 대한 여성들의 높은 관심을대변한다.그때 선발된 15명중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었던 사람은 김경오(金璟梧)한사람 뿐이었다.적성에도 맞지 않았고,힘겨운훈련에도 적응하지 못했던 탓이다.
김경오는 52년의 휴전직전 L-19기를 처음 타는 것으로 조종사생활을 시작했다.
공군사관학교는 97학년도 사관생도 모집에서 처음으로 20명의여자생도를 선발했다.여자생도 경쟁률이 22.1대1이나 됐으며,평균성적도 남자생도보다 11.9점이나 높았다고 한다.특히 여학생들의 지원이유가 한결같이.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였다니여성전투기조종사를 볼 수 있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같다.하지만 생텍쥐페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비행기조종은 낭만적인 일만은 아니다.
더구나 전투기조종사가 된다는 것은 자기희생이 전제돼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극기(克己)의 훈련과정을 신세대여성들이 어느 정도나 감내할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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