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보는 세상] 우리 선생님이 최고 멋쟁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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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 폐하
수지 모건스턴 글, 카트린 르베이롤 그림
비룡소, 50쪽, 6000원

조커
수지 모건스턴 글, 미레유 달랑세 그림
문학과지성사, 74쪽,6000원

고맙습니다, 선생님
패트리샤 폴라코 글·그림, 아이세움, 40쪽, 7500원

선생님, 우리 선생님
패트리샤 폴라코 글·그림, 시공주니어, 40쪽, 7500원

선생님 노릇 하고 산 지 십년을 훌쩍 넘겼다. 수많은 아이의 얼굴이 영화처럼 스쳐간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일년 내내 자잘한 사건과 질긴 씨름을 하게 했던 녀석들이다. 아이들과 밀고 당기는 승강이 끝에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녹초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특한 녀석들의 마음 씀씀이가 눈물나게 고마워 힘이 절로 나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훈장 같은 경력이 붙어갈수록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학생들과 사랑과 존경을 주고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아이들이 읽는 책 속에 등장하는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은 것이다.

『우리 선생님 폐하』에 나오는 스틸리아노 여선생님은 학교에 오려고 매일매일 여왕처럼 옷을 차려입는다. 또 교실은 쇠창살 속에 떠있는 초록 섬과 같다. 창가에는 꿀풀과 박하, 쑥과 장미가 자라고 있다. 교실 안쪽 벽에는 책을 잔뜩 꽂아놓은 책꽂이가 있고, 다른 벽에는 화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 선생님에게 교실은 하나의 우주이며 가정이다.

그런 스틸리아노 선생님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교실안의 벽장을 정리하고는 문을 잠가버렸다. 아이들은 그 이유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정년퇴임식이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뒤 그 진실은 밝혀졌다.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교실 벽장 속에서 살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 말고 선생님이 더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감동으로 벅차오르는 순간이다. 우리 선생님 폐하께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 선생님 폐하』를 쓴 수지 모건스턴의 다른 책 『조커』에는 사방으로 뻗친 흰 머리에 조그만 안경을 걸치고 있는 노엘 선생님이 등장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실망을 준 선생님의 외모와 다르게 선생님은 첫 날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말로 하루를 시작한다. 뒷면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숙제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떠들고 싶을 때 쓰는 조커’, 심지어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까지 적힌 조커 카드였다. 아이들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차츰 조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선생님이 주신 자유를 깨닫는다.

선생님은 서두름도 질책도 없이 아이들이 내미는 조커를 너그럽게 받아준다. 선생님은 더 이상 할아버지 선생님이 아니라 매일매일 특별한 선물을 나누어 주는 산타클로스였다. 어느덧 학교는 너무나 가고 싶은 곳이라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는 필요없게 된다. 아이들은 자유 속에서 스스로 깨닫는 공부방법을 배우고, 인생을 더욱 사랑할 줄 알게 된다. 얼마나 멋지고 황홀한 선생님인가.

패트리샤 폴라코의 『고맙습니다, 선생님』에 나오는 폴커 선생님도 멋진 선생님이다. 책을 좋아하는 가정에서 자란 트리샤는 이상하게도 5학년이 되도록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난독증 때문이었다. 트리샤는 자꾸만 어둡고 그늘진 곳에 혼자 있으려 했다. 그런 트리샤를 ‘햇살이 환히 비치는 탁 트인 넓은 공간’으로 데리고 나온 분은 폴커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용기 있고 똑똑한 아이라며 늘 힘이 되어주었다. 선생님의 사랑은 트리샤가 책을 읽도록 하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트리샤는 책 읽는 것이 너무나 좋아 자라서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하는 폴커 선생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트리샤는 바로 작가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이었다.

패트리샤 폴라코의 또 다른 작품 『선생님, 우리 선생님』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흑인 교장 링컨 선생님이 등장한다.

옷을 멋지게 입고 늘 함박웃음을 지으며, 학교행사도 최고의 것만 하기 때문에 아이들 모두가 좋아한다. 그런데 심술쟁이 백인아이인 유진만은 교장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는다. 유진의 닫힌 마음을 어떻게 열까. 링컨 선생님은 유진이 좋아하는 새가 날아오도록 학교 화단을 함께 가꾸고, 아기오리들을 기르면서 유진의 응어리진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유진 마음 속에 새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끌어내 준다. 그리고 유진 마음 속에 깊이 박힌 인종에 대한 편견도 버리게 한다. 책 표지 안쪽 그림에는 아이들과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백인 선생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유진이 자라서 선생님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유진은 “저에게 밖으로 나오는 길을 가르쳐 주신 분은 교장선생님”이라고 말한다.

여왕같이 정성껏 옷을 차려 입고 교실을 집처럼 꾸미고 아이들에게 뭔가를 주는 것을 인생의 전부로 아는 스틸리아노 선생님, 마음껏 누리는 자유 속에서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유머와 아이디어로 베풀어 주는 노엘 선생님, 칭찬과 격려로 끝까지 기다려주는 폴커 선생님, 아이의 마음을 믿어주고 한없는 사랑으로 든든하게 지켜주는 링컨 선생님. 나도 이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강백향 (안산반월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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