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칼럼>'法의 칼' 만이 能事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최근 검찰이 장정일씨의 소설.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출판되자마자“저질음란물로 풍속을 해칠 위험이 있다”며 출판사간부와 작가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흘리고 나서 문단이 벌집쑤셔놓은 듯하다. 지난달 문단 관계자들은.검찰의 조치는 문단의 자정(自淨)기능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요지의 성명서를 잇따라 발표했다.
사실 이 책은 평단과 기자들 사이에.외설시비'가 점쳐졌고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도.음란성'을 문제삼아 제재를 논의하려는 참이었다고 한다.결과적으로 검찰과 문단의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반발이 거센 것은“문단자정기능에 의해 도태될 소설을 검찰이.소잡는 칼로 파리를 잡겠다'며뛰어들어 문단질서를 어지럽혔다”는 한 문단관계자의 말처럼 최근우리 사회의 모든 질서를 검찰이 법(法)의 칼로 재단 하려는데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자정기능에 의한 정화보다 앞서 가동되는 법의 처단'에 대한위험성을 지적하는 이들의 외침은 최근 줄줄이 일어난 서울시 하수도공사비리나 버스비리,전국방장관 뇌물스캔들등 일련의 비리사건처리과정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이 비리사건들의 경우 국민이 검찰에 대해 많은 지지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법의 칼을 대기 전에 자정기능을 통해 정화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등에 제도적으로 설치된 자정기구인 감사관실이 제 기능을 다했다면 이렇게 국민들에게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 자정기능의 고장으로 전체 공직사회의 명예와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더욱이 국민들의 정서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공직사회 자정기능의 고장 때문에 검찰이 우리사회 전체가.자정기능수행 결핍증'을 앓는 것으로 진단해.문민시대 사정의 주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검찰이 우리 사회의 모든 사고와 행위를 판단하고 교통정리해주어야 한 다'고 여긴다면 이는 아찔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검찰만능(檢察萬能)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그 이유는.최소한의 상식'인 법으로 다양한 사고와 행위를 판단하는 것은 국민수준을.최소한'으로 끌어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 각 분야의 자정기능이 살아나야하고 존중되어야 한다.아무리.사정의 시대'라 해도 만사 법의 칼로 재단(裁斷)되는것이 능사로 통하는 사회는 결코 밝은 사회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자정기능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등 다 양한 대책이 필요하다.
양선희 사회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