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 김성근의 매직 … SK, 또 한번 전설을 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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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 9회 말 1사 만루에서 두산 김현수의 병살타로 경기가 끝난 뒤 SK 투수 채병용이 마운드에 꿇어앉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치켜들며 환호하고 있다. 뒤에서 달려오는 선수는 SK 2루수 정근우. [뉴시스]

상대의 약점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전략은 정규시즌보다 더 치밀했다. 우승을 위해 하나가 된 팀워크는 더 단단해졌다. SK가 2008 삼성PAVV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SK는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 5차전에서 두산을 2-0으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우승했다. 정규시즌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 패권까지 거머쥔 ‘천하통일’이다. SK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휩쓸었다.

SK는 5차전에서 7회 두산 3루수 김동주의 실책으로 선취점을 낸 뒤 8회 최정의 적시타로 1점을 더 보탰다. 두산은 9회 1사 만루의 기회를 병살타로 놓치면서 땅을 쳤다. 3차전에 이어 또 김현수가 전세를 뒤집을 절호의 찬스에 병살타를 쳤다. 김현수는 한국시리즈에서 21타수 1안타로 극도로 부진했다. 정규 시즌 타격왕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였다.

SK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공격의 집중력도 앞섰지만 수비로 두산을 제압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수비 훈련만 하루 3시간 이상 했다”고 밝혔던 SK는 발 빠른 두산 주자들이 베이스 하나라도 더 진루하지 못하게 했다. 상대 타구에 맞춘 상황별 훈련을 거듭한 결과 두산은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도루 3개에 그쳤다. 또 하나. SK는 두산 타선의 핵심인 이종욱부터 김현수까지 상위 타선을 철저히 묶었다. 그중 ‘김현수 시프트’는 큰 효과를 발휘했다. SK는 좌익수 박재상과 3루수 최정 등이 주로 왼쪽에서 김현수의 타구를 그대로 잡아냈다. SK 투수들은 히팅포인트가 다른 타자들보다 뒤에 있는 김현수에게 바깥쪽 공을 던져서 타구 방향을 왼쪽으로 유도했다.

톱타자 이종욱을 상대로는 집요하리만치 왼손 투수를 바꿔가며 괴롭혔다. SK 불펜의 정우람·이승호·가득염 등 ‘벌떼 마운드’의 좌완들이 이종욱 타석 때마다 바꿔 가며 틀어막았다.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5할1푼7리로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었던 이종욱은 한국시리즈에서 19타수 5안타에 그쳤다. 이처럼 SK는 상위 타선이 살아나야 경기가 잘 풀리는 두산을 상대로 ‘혈을 짚어내는’ 수비 작전을 펼쳤다.

2008 한국시리즈 챔피언 티셔츠와 모자를 착용한 SK 선수들이 우승컵을 앞에 놓고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똘똘 뭉친 팀워크도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정규시즌 내내 백업으로 밀려 서러웠다”고 눈물을 흘렸던 김재현·박재홍 등 베테랑들은 올해 먼저 후배들을 다독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김재현은 1, 2차전 연속 홈런포로 공격의 포문을 열었고, 2차전에서 이재원에게 밀려 선발에서 빠지고도 “개인 성적은 바라는 게 없다. 후배들을 밀어주면 족하다”고 박수를 쳤다. 4, 5차전에서 마무리로 나선 선발 요원 채병용은 “우승만 한다면 내가 주인공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승장 김성근 감독은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나는 제3자였다. 선수들이 알아서 뛰었기에 나는 편하게 경기를 봤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패장 김경문 감독은 “삼세번은 실패했다. 7전 8기라도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기세를 몰아 ‘마지막 소원’이라던 한국시리즈 우승에 세 번째 도전했지만 이번에도 승리의 여신은 그에게 미소 짓지 않았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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