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가 남성학 열풍-강좌개설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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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대학가에 남성학 선풍이 불고 있다.지난 9월 뉴욕의 호바트대를 선두로 각 대학에 하나 둘 개설되기 시작한 남성학강좌는미시간.일리노이.콜로라도.오하이오등 명문대학들이 동참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96년 미국대학가의 핫 이슈는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남성이었다.”-내년도 남성학과 설립을 추진중인 일리노이대의 한 당국자는 지난 학기 대학가를 들뜨게한 남성학 열기를 이렇게 설명하고있다. 남성에 대한 관심이 새삼 급증하게 된 것은 오늘날 미국문화현상의 단면인 남성상실,부권부재와 무관하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70년대부터 미국을 휩쓴 성혁명과 페미니즘운동은남녀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남성의 전통적 역할 과 기질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말았다.용감한 여성과 나약한 남성이 등장,사라진 하우스 와이프(가정주부)자리를 하우스 허즈번드가 메워야 했다.한국과 달리 현대 미국남성들은 남자된 외로움과 괴로움을 겪을 기회조차 박탈당한.거세된 남성'으 로 전락하고 말았다.미국 대학의 남성학은 이처럼 잃어버린 남성들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현재 각 대학에서 수강생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과목도.남성의 역할'(콜로라도대),.남성의 본질'(오하이오대),.남성학 원론' (호바트대)등으로 남성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는게 미시간대 아비게일스튜어트 심리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이같은 남성학은 남성학의 창시자 로버트 블라이(70)의 소설.강철같은 사나이 존'을 바이블로 삼고 있다.이 책에는“남성의내부에는 본래 야성인(Wild Man)이 자리하고 있는데 현대남성의 비극은 본래 자아로부터 괴리된데 있다” 고 쓰여 있다.
야성을 되찾는 작업이야말로 남성학의 선결과제인 셈이다.
따라서.무서운 아버지'를 상징하는 셰익스피어의.리어왕'과 .
맥베스',가부장의 권위를 보여주는 그리스 신화들은 남성학 연구자의 필독서다.현대인물 중에서는 터프가이의 전형인 마이클 더글러스가 출연한 영화들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웨스턴 물이 정식교재로 채택되고 있다.
남성학에 대한 관심은 여성들 사이에도 확산되고 있다.콜로라도대에서 남성학을 강의하는 샘 사핑턴 교수에 따르면 여학생들은 보이프랜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기꺼이 남성학 강의실을 찾는다고 한다.“왜 모든 남자들은 성폭력의 욕구를 갖고 있을까”“남자들의 외도는 난치병인가”가 이들의 관심사다.
여성들이 남성의 심리를 알고 싶어하는 반면 남성들의 관심은 지극히 현실적인데 있다.“2000년대에는 남녀의 고용비가 어떻게 될까”“직장에서조차 여자 상사 모시기 시대가 올것인가”등은늘어만 가는 남성들에 대한 여성의 폭력과 함께 생각만 해도 남학생들을 우울하게 하는 주제들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들 대부분은 96년 가을을 여성학에 대한 남성들의 공식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있다.그러나 일부에서는“남성학이 여성학에 대한 반격에서 출발한 것은 사실이나 현대사회에서미아가 돼 버린 자신들을 이해하려는 측면이 강하 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전문가들은“페미니스트들의 이상이 가정과 남편으로부터 독립된 여성이라면 남성주의자들의 목표는 좋은 아버지와 남편으로 가정에 귀속되는 것”이라며 남성학이 가져올 균형잡힌 양성문화 시대에 대한 낙관론을 펴고 있다 .

<최성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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