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짚기>한국의 웃음산업-참을수 없는 웃음의 '狂氣'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한국인에게 .폭소'는 있지만 .미소'는 없다.외국인은 말한다.“한국인의 얼굴은 항상 굳어 있다.웃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외국에 가본 한국인들은 그들의 미소속에 스며있는 여유를 부러워한다.그 부러움 속엔 웃음에 대한 콤플렉스가 숨 어 있는 걸까.안방극장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의 양태를 보라.발작적인 폭소 이외에 어떤 웃음이 있는가.우리는 웃음을 통해 무엇을 얻어내려하는 것인가.억눌렸던 목소리의 대리 해소? 대상을 찾지못한 폭력성의 배설? 만들어서라도 갖고 싶은 여유의 느낌같은 것.
년대 중반을 사는 .웃지않는'우리는 문득 주변에서 웃음의 홍수를 깨닫는다.방송.영화등 미디어에서부터 사이버 공간이나 일상생활 속에서,권위의 무게를 먹고 사는 정치판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웃음의 증가현상을 발견한다.
TV광고의 한 대목.
어두운 지하실.범죄조직이 범행모의를 하고 있다.몰래 숨어든 경찰 두사람은 권총을 들고 고양이 걸음으로 숨죽여 접근한다.
그때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당황한 경찰관들은 어쩔 줄 모른다.범인들에게 발각된 이들은 벽구석에 서서 벌서는 어린아이의표정을 짓는다..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는 이 휴대폰 광고는 휴대폰의 성능을 코믹하게 선전해 크게 히트했다.
또 파리 소리보다 소음이 적다는 청소기 광고나 바이어를 만나려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회사원이 건강음료는 챙겼는데 낙하산을빼먹었다는 광고등 코믹광고의 예는 엄청나게 많다.지난해 초부터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유머광고는 유머광고가 전 체의 20~30%를 차지하는 유럽등 선진국보단 아직 적지만 계속 증가 추세다. 현재 한국영화의 주류는 코믹물이다.92년 .결혼이야기'와 93년 .투캅스'의 성공이후 매년 수십편의 코믹영화가 나오고 있다.장사가 된다는 얘기다.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를 줄타기하는 영화라는 장르의 속성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지만 감각적이고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는 90년대 우리사회의 문화식성(食性)을 적절히 파악한 전략이다.
올해 80여만명을 동원한 .투캅스2'의 성공도 같은 맥락에서이해할 수 있다.
“좋은 영화는 재미있다.재미있는 영화는 흥행도 잘된다.”.투캅스'의 강우석 감독은 영화의 재미는 웃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방송의 코미디화는 이미 90년대초부터 두드러졌다.TV 주말 대형쇼의 진행자는 거의 개그맨들이다.웃기고 재미있는 초대손님이인기가 높다.지난달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정재철(동신대)교수는 대형 쇼 프로그램의 구성은 코믹드라 마 38.3%,시트콤 17%등 코미디가 절반을 넘는다고 지적했다.
***43면에 계속 ***라 디오도 마찬가지다.음악을 위주로하는 FM프로그램도 음악보다 말이 지배한다.2시간짜리 프로그램에서 음악의 비중은 30~40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우스운 이야기'가 차지한다.
우리사회의 웃음추구 현상은 엄숙주의의 상징처럼 보이던 정치판국회의원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우리나라 안보는 택시 기사가 책임지고,우리나라 정보는 생포간첩 이광수가 책임진다”“여기가 자원을 재생하는 공사인가 아니면 퇴직자들을 재생하는 공사인가.” 엄숙.근엄하기로 유명한 안기부에서조차 “포수에게 총을 뺏은 뒤 맹수를 잡으라고 해서는 안된다”며 안기부 수사권 부활을 위트있게 주장했다.
기업체들도 자사 이미지 홍보를 과거의 일방적 선전에서 포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바꿔나가고 있다..우리 것이 제일 좋다'나.1등 주의'에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등 부드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PC통신 서비스중 단연 인기가 높은 곳이 .유머방'이다.이곳에는 하루 수백건의 창작.인용 유머가 쏟아지고 있으며 각종 웃음 시리즈가 난무한다고 한다.신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배우자의 조건으로 .유머감각'을 높이 꼽았다는 보 도도 있다.
그런데 웃지 않는다는 한국인들 주위에 넘치는 이 웃음은 무엇인가.사회학자 김성기씨의 분석.“본격적인 소비사회로 접어들면서더 즐거운 것.부드러운 것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고 봅니다.웃음은 이같은 소비사회의 대표적 문화현상이 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웃음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자연스러운교류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김씨는 “소비가 거품일 정도로소비능력 자체는 대단하지만 소비사회를 정착시키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인프라,이를테면 사람들간의 신뢰나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에게 웃음은 내면에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인 셈”이라고 덧붙였다.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웃음은 그늘진 면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윤석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