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당 떼인돈 400여만원-중국교포 사기피해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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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95년 1월 한국인 李정석(33.서울강동구성내2동)씨는 중국여행을 하던 중 병에 걸렸다.이때 옌지(延吉)에 사는 金채순(61.여)씨는 온가족이 나서 병원을 다섯곳이나 전전하며 그를 치료해 줬다.당시 金씨 가족이 부담한 병원비만해도 중국돈 3만위안(약 3백만원)이 넘는다.
그후 李씨는 4월초 다시 옌지에 와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교포들을 연예인 초청형식으로 초청하겠으니 사람을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金씨는 17명을 모아 이들로부터 중국돈 27만위안(약 2천7백만원)을 받아 李씨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나 李씨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돈을 챙겨 달아난 것이다.그후 金씨 가족과 17명의 피해자.채권자들이 겪은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18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재중국동포 시민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중국 현지조사 결과와 피해사례는 한국인에 의한 사기 피해가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자살.이혼.별거.감옥행.유리걸식.정신이상.매춘등으로 파탄지경 이라는 것이다.그나마 대책위는 조사기간중 접수된 피해건수나 피해금액은 전체피해중 극히 일부분일 것으로 추정했다.
대책위는 우선 이들 피해자 신고건수 자체가 「직접 피해」건수의 절반 수준 정도라는 것이다.그리고 이들 직접 피해자 한 사람당 보통 3가구로부터 돈을 빌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따라서 현지 가족형태상 가구당 평균 5명씩 살고 있음에 비춰 보면 직.간접으로 사기피해를 본 조선족 교포의 수는 약 8만가구,40만명에 이른다는 것이다.이는 옌볜(延邊)2백만 조선족의 20%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다.
이날 대책위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기사건 때문에 교포들의 분노가 폭발직전에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지난달 한국정부에 보상을 요구하며 시작된 25만 서명작업이 벌써 2만명을 넘어섰고 앞으로 5천명이 베이징(北京)주재 한 국대사관을 찾아가 농성할 계획까지 세웠다는 것이다.
한편 대책위는 특별수사부 설치.조사및 조선족 교포에 대한 물질적 보상,산업연수생 제도 개선을 위한 외국인 근로자 관련법 제정등을 한국정부에 촉구했다.
〈이창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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