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경기 침체속 高金利 '네탓'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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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자가 높아서 장사 못하겠다.』 『무슨 얘기냐,이자가 높은게 누구 때문인데.』 불황이 깊어가고 있는 가운데 도처에서 「네탓이요」 논쟁이 한창이다.
최근들어서는 특히 우리 경제의 여러 「고질」중 하나인 고금리를 둘러싼 재계와 통화당국간의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 12일에 열렸던 전경련(全經聯) 회장단 간담회는 금리문제에 대한 재계의 시각을 선명하게 보여준 자리였다.이홍구(李洪九)신한국당대표 초청 간담회로 진행된 이자리에서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회장단은 우리 경제 난국의 핵심으로 금 리와 임금을꼽았다.이자 때문에 경쟁이 어렵다거나,금리를 잡지 않고서는 물가안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었다.요컨대 우리 경제가잘 안되는 중요한 이유는 「금리 탓」이라는 얘기였다.
돈줄을 관리하는 한은(韓銀)도 가만있지 않았다.이날 오후 한은 부설 금융경제연구소는 「우리 경제의 고비용 저효율구조 개선방안」이라는 자료를 내놓고 고금리의 책임이 어디 있는지를 따졌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제조업)의 금융비용부담률이 높은 것은 전적으로 「기업 탓」이다.그동안 금리는 내렸는데기업의 금융비용부담이 늘어난 이유는 다름아니라 기업들이 빚을 너무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실제로 우리 기업 들의 차입금 평균금리는 지난 90년 12.7%에서 95년에는 11.7%로 1.0%포인트가 낮아졌다.그러나 금융비용부담률은 같은 기간중 5.1%에서 5.6%로 늘어났다.
한은의 주장은 이런 결과는 기업들이 매출액보다 차입금(빚)을더 많이 늘린 때문이라는것.
한은은 지난 91~95년 5년동안 기업들의 매출액이 연평균 16.4% 늘어난데 비해 차입금 잔액은 평균 20.4%씩 늘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양측의 이같은 공방은 기업들의 재고부담이 쌓이면서 자금난이 심화된 지난 8월이후 본격화하고 있다.
단기금리를 중심으로 금리가 뛰자 기업들의 고금리 성토가 잦아졌고,지준율 인하와 은행들의 여수신금리 인하를 얻어내는 성과도있었다. 〈손병수 기자〉 문제는 재경원의 태도다.한은을 포함한금융계에 금리인하 압력을 노골적으로 행사해왔던 터라 묘하게도 금리에 관한 한 통화당국보다 전경련쪽에 더 쏠려있는 것이다.
금리위주의 통화관리 필요성을 계속 강조하는 것도 사실상 한은에 대한 은근한 압력행사다.
한은은 이같은 압박을 기업경영분석을 토대로 높은 금융비용부담의 원인이 기업들에 있다는 점을 분석한 자료를 잇따라 내놓으며대응하고 있다.9월 이후에만 4건 이상의 분석자료를 내놓고 기업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러나 양측의 이같은 공방은 정작 고금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방안보다 책임소재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서강대김병주(金秉柱)교수는 『어려운 때일수록 네탓,내탓만 따지다 보면 될 일이 없다』면서 『기업들은 고금리나 높은 금융비용부담률을 초래한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점을 먼저 인정하고 대안을제시해야 하며,통화당국 역시 문제의 원인을 찾아 시장원리에 맞게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성숙한 자세가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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