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 천혜의 '잠수함 길'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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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서 특이한 해류 현상이 밝혀져 한.미.일 해양학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동해는 북쪽에서 한류가 내려와 남쪽에서 밀려들어오는 난류와 만나는 지점. 미국의 대중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5월호에 따르면 한.일 공동연구팀과 미 해군이 주축이 돼 1999년부터 동해상의 해류를 정밀 분석한 결과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있는 울릉분지에서 수온이 낮은 소용돌이가 발생해 남서쪽으로 진행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그동안 이 소용돌이가 위성을 통해 밝혀지지 않았던 것은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첨예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학술적으로 주목을 끌지 못했기 때문. 이번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은 이 소용돌이를 '독도의 찬 소용돌이(Dok Cold Eddy)'로 부르고 있다. 올해 초 이를 처음 발견한 미해군연구소(NRL)의 더글러스 미첼은 "이 같은 소용돌이는 일시적으로 발생했다 소멸하는 소용돌이와는 성격이 다르다"며 "캘리포니아만의 소용돌이처럼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동해의 해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 북쪽에서 내려온 한류가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서 소용돌이를 형성하는 모습. 이 소용돌이는 쓰시마섬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난류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미.일 공동연구팀은 99년 6월부터 2001년 7월까지 동해 일대에 '역반사 음향기' 수십여대를 설치해 해류의 흐름을 집중 분석했다. 이 장치는 해저에 고정돼 수면으로 음파를 쏘아 되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되돌아오는 시간은 물의 밀도 차이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찬물은 밀도가 높아 음파가 되돌아오는 시간이 더뎌진다.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더운 물은 반대의 결과를 나타낸다. 2년간의 데이터를 면밀하게 분석했더니 울릉분지에서 지름 60㎞의 소용돌이가 발생해 쓰시마섬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국해양연구원 김철호 해양기후환경연구본부장은 "난류와 한류가 만나면서 한류에서 차가운 물 덩어리가 난류 속으로 끊어져 나오는 현상"이라며 "회전 속도는 0.5~1노트 정도여서 육안으로 구분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소형 어선의 속도는 대략 10~20노트 수준이다.

특히 미 해군이 동해상의 소용돌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배경은 대 잠수함전에 응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잠수함이 소용돌이를 통과할 경우 잠수함에서 발생하는 음향정보가 소용돌이에 의해 산란되면서 정확한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한마디로 동해의 소용돌이는 잠수함에는 천혜의 이동통로인 셈이다. 그동안 200만달러(약 24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한 미 해군은 이 지역의 소용돌이 형성과정과 이동경로를 면밀하게 분석해 밀도차가 큰 해상에서도 잠수함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소용돌이는 해운회사의 항로결정에 응용될 수 있다. NRL 윌리엄 티그는 "이 같은 소용돌이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며 "해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경비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소용돌이 연구 결과는 어부들이 어종을 선택하는 데도 도움을 줄 전망이다. 동해상의 소용돌이는 난류 속에 찬 물기둥이 움직이는 것인 만큼 수온에 민감한 어종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소용돌이가 지나가는 지점에서 난류 어종을 기대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더 많다는 지적이다. 미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대의 해양물리학자 토미 디키 교수는 "소용돌이에 대한 연구는 이제 초보단계에 불과하다"며 "그런 점에서 동해상의 소용돌이는 학술적으로 무척 관심이 가는 소재"라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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