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영국 헤이 온 웨이 마을의 문화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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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헤이 온 웨이.통틀어 2천명 남짓 사는 영국의 외딴마을이다.
그런데 5월말이나 6월초께면 40여만명이 북적거려 이 마을을 쏠쏠하게 살찌운다.
평소에도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기 때문에 주민들은차량이나 숙박소를 깨끗이 지키기만 하면 될 뿐 먹고 사는 걱정은 안해도 된다.
광역지도나 돼야 점 하나로 찍힐 뿐인 이 마을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유명해졌으며,또 이처럼 풍족하게 되었을까.그것은 지금부터 서른다섯해 전,부스라는 주민이 폐허가 되어가는 마을에 문화를 심을 요량으로 시작한 헌책운동에서 비 롯됐다.그 후로 이 문화운동은 여행문화와 맞물려 나날이 번성하고 있다.
다 허물어져 가는 성을 약간만 고쳐 창고식 헌책방을,그리고 다른 공간도 조금씩 손대 또다른 책방들을 만든 뒤 마을 곳곳을아늑한 숙박소와 전통음식점으로 고쳐놓았다.
그런 식으로 문화고장으로 탈바꿈하자 책속에서 보물을 캐려는 사람들이 이 한적한 마을로 몰려들었다.
새롭게 만든 것이라곤 전혀 없이 있는 그대로를 문화와 접붙인것이다. 지금도 성 귀퉁이의 방에서 가랑이가 너덜너덜하게 해진바지를 입고 헌책을 분류하는 부스는 말한다.
『이곳은 날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벨기에.프랑스.일본.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아이디어를 듣겠다는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어요.그건 우리의 문화운동이 특별해서라기보다 처음으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지요.』 헤이 온 웨이의 문화운동은 문화전쟁시대를 맞으면서 그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다.헌 책을 한곳에 모은 곳은 단순한 도서저장고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산실이다.영화코너를 예로 들어보자.
이곳에만 오면 영화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자료는 무엇이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찾아 이 외진 곳으로 꾸역꾸역 모여드는 것이다. 덕분에 이 마을 주민들은 특별히 건물을 짓거나 물건을 생산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게 됐다.문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님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다.
형난옥 현암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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