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나이에 재결성한 '섹스피스톨스' 일본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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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78년 『로큰롤은 죽었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음악계를 떠났던 「섹스 피스톨스」가 불혹의 나이에 재결성한 목적은 무엇일까.90년대의 상황이 그들이 처음 출현했던 76년 당시처럼 격렬하게 소리지르고 두들겨대지 않으면 안될만큼 미래 가 보이지 않아서일까.
지난 4,5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이들의 공연은 이 의문에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했다.대신 그들은 『펑크(punk)란 바로 이런 것』임을 일갈하듯 원형 그대로의 펑크 록을 들려주었다.
서커스 단원처럼 우스꽝스런 옷차림으로 나타난 자니 로튼(지금은 존 린든으로 개명)의 상기된 목소리는 김수영의 시구처럼 어떤 대상을 향해 「침을 뱉듯」 독설과 냉소에 가득찬 것이었다.
질주감 넘치는 기타 사운드를 만들어 낸 스티브 존 스는 이따금큰 원을 그리며 기타를 올려치는(업스트로크)장면을 연출했는데,그것은 노래로 반항하고 냉소를 퍼부었던 기성의 제도와 질서에 대한 「삿대질」이었다.
그들이 1시간동안 쉬지 않고 부른 15곡의 노래들은 20년전유럽과 미국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질풍노도」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하지만 그 노래들이 갖는 호소력은 별개의 문제였다.관객들은 열광했지만 정서적 교감은 이뤄지지 않아오히려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섹스 피스톨스가 영국여왕을 『저능아』라고 조롱하고 『우리는 무정부주의자』라고 선언하며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외쳤던 70년대 중반,유럽을 휩쓴 불황은 젊은이들을 극도의 박탈감과 허무속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자본주의가 풍요를 누리고 가상현실이 현실화되는 90년대의 상황은 이와는 다르다.90년대의 젊은이들은「미래가 없던」 70년대와 달리 미래가 「과잉」이어서 혼돈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다.때문에 90년대의 젊은이들 은 분노하지 않는다.그것이 70년대의 섹스피스톨스가 원형의 펑크를 연주해도공허하게만 들리는 이유가 아닐까.
[도쿄=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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