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조 협박에 무산된 정책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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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동연구원이 준비한 정책토론이 노조 방해로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연구원은 어제 총리실 주최 ‘국정과제 세미나’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발표 내용을 사전에 입수한 한국노총이 “물리력을 동원해서 발제를 저지하겠다”며 위협하자 세미나 직전 일정 자체를 취소해 버렸다는 것. 연구결과에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간제 사용기한을 폐지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는 비정규직 해법에 관한 노동계 주장에 정면으로 대치된다는 점에서 한국노총의 반발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백 걸음을 양보해도 방법이 잘못됐다. 노조는 토론장에 나와 정정당당히 반대논리를 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했다. 노동연구원의 대응에도 문제가 많다. 노조의 위협을 이유로 정부 주최 세미나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갑작스러운 일정 취소에 당황했을 외국 손님들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노조원 난입으로 다른 토론까지 방해될 것 같아 그랬다”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로는 노동계의 협박에 굴한 것이다. 총리실과 연구원은 토론을 취소할 게 아니라 공권력을 요청해 노조의 난입에 대비했어야 했다. 정부 행사를 방해했으면 엄연히 공무집행 방해인 것이다.

나라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가뜩이나 외국 자본들이 발을 빼고 있는 상황에 밖에서 이런 소식을 접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답답하다. 그들이 한국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강성 노조의 존재라는 사실을 노사도 정부 당국도 되새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