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뽀빠이 사건,제도개혁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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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뽀빠이 이상룡(李相瀧)씨의 공금유용 문제가 시끄럽다.20년간심장병 어린이를 도와 왔던 것이 결국 물거품으로 끝나고 사회적으로 매장될 위기까지 맞고 있다.본인은 회계상의 실수라고 하나사회는 착복.횡령이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해마다 한두건씩 이런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사회복지(社會福祉) 시설.단체들의 대형 부정.비리사건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그때마다 사회복지 관계자들은 얼마나 마음을 죌까.시설.
단체장들은 혹 정부의 일제감사가 시작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정부나 전공학자들은 이런 일로 사회복지에 대한 국민관심이 줄어들지 않을까 애를 태운다.
실제 이같은 대형 비리사건이 한번씩 터지고 나면 고아.노인.
장애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기관에는 국민성금과 자원봉사의 발길이크게 준다.찬바람이 시작된 올 겨울 역시 스산함이 심할 것 같다. 어쩌다 이런 일이 계속될까.이는 사회복지시설에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 1차 이유일 것이다.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잘못된 정책과 제도다.바로 정부가 문제인 것이다. 정부는 지난 51년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을 제정,사회복지 기관.단체들의 기부금모집을 규제해 왔다.즉 모든 기부금품모집은 관할 행정관청으로부터 「사전허가」를 받도록 한 것이다.
그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은 70년도까지 두차례 개정 이후 25년동안 한번도 손질이 없다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기부금품모집규제법」으로 바뀌었다.
이 「금지법」 또는 「규제법」이 문제다.시.도지사,또는 내무부장관이 기부금품 모집을 「사전허가」하는 것에만 신경쓰도록 했지 그 모집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재정.회계상태가 어떤지 「사후감독」은 무관심하게 조문이 돼 있는 것이다.그 러니 부정과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모금의 사전허가 과정에서도 부정의 소지가 있고,이번 李씨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년간 회계상태가 엉망이어도 그냥 넘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불우이웃돕기 성금함에 돈을 내면서도 이 돈이 제대로쓰여지는지 늘 궁금해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정부의 그 「사후감독」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늘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허겁지겁 행정감사가 나가니,검찰이 수사에 나서니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참고로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세계에서 민간복지가 가장 활성화된 미국은 우리와 정반대다.사전모금은 자유롭게 허가하고 대신 사후감독을 철저히 한다.모든 민간단체의 설립을 자유롭게 하고 모금도 자유롭게 하게 돼 있다.어느단체에 얼마를 기부할까는 국민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대신 돈의 흐름에 대한 감시는 철저하다.모든 민간단체들은 해마다 연방국세청(IRS)과 주정부에 일체의 회계상태를 보고해야한다.주정부는 주 검찰총장이 모금법상의 처벌사항을 규정,검찰이직접 개입토록 하고 있다.예를 들어 펜실베이니 아주는 부정시 5년이하 징역에 처한다.그러니 투명해질 수밖에 없고 국민의 신뢰가 갈 수밖에 없다.
우리도 진작 바뀌었어야 했다.과거 상이군경시대의 법인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가지고 내무공무원들이 「사전도장」을 찍어주고그후엔 나 몰라라 할 일이 아니다.
「모금 감독법」쯤으로 해 모금은 자유롭게 허가하고 법적.행정적 사후감독은 철저히 해 민간복지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그것이 민간 사회복지단체들에도 떳떳함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 법 운영도 내무부 보다는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게 낫다.여하튼 이번에 민간 비영리단체의 회계상태를 형사상(刑事上)의 문제로 철저히 다루는 감독체계가 수립돼야 한다.바로 「돈」문제가 아닌가.그것도 보통 돈인가.국민의 정성이 담긴 얼마나 애틋한 돈인가.
(본사 자원봉사사무 국 전문위원) 이창호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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