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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네트 반홀트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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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승용차로 한시간쯤 달려가자 팰러앨토에 둥지를 튼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이하 애질런트) 본사가 나타났다. 팰러앨토는 실리콘밸리가 태동한 지역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본사 메인 빌딩 3층 집무실에서 만난 네드 반홀트(61)회장은 하늘색 셔츠의 편한 복장으로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5평 정도의 집무실은 유리를 통해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수년간의 구조조정이 완료됐다. 비용 구조를 경쟁력 있게 갖춰놓았다. 최근 미국 경기가 좋아지고 있어 더욱 희망적이다. 2002~2003년은 내 평생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반홀트 회장은 애질런트가 좁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말문을 열었다. 애질런트는 1999년 휼렛패커드(hp)에서 분사한 이후 2000년 매출 94억달러를 기록했지만 정보기술(IT)산업의 침체로 2002년엔 매출이 60억달러로 곤두박질했다. '직원 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hp 방식(The hp Way)'을 추구해온 반홀트 회장이지만 인력 축소 등 경비 절감이 불가피했다. 그 결과 한때 4만4000여명에 달했던 애질런트의 인력은 현재 2만8000여명이다. 전 세계에 42개가 있었던 제조공장도 15개로 줄었다. 하지만 구조조정 효과는 긍정적이었다. 2003년 4분기부터 흑자(1300만달러)로 돌아서더니 올 1분기엔 7100만달러의 흑자로 도약의 기틀을 잡았다.

-앞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어려운 시기에 연구.개발(R&D)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아 성장동력은 충분하다. 매년 12% 이상을 R&D에 투자해 왔다. 오히려 가장 어려웠던 2002년에 매출의 21.6%를 R&D에 투자했다. 이 수치는 분사 이래 가장 높다. 제휴업체들과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유지해왔다."

-성장을 견인할 전략상품이 있나.

"4~5개 분야에서 연간 6~8%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무선통신 계측기 분야는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전 세계 휴대전화의 70%가 애질런트의 계측장비를 이용해 테스트되고 있다. 통신기기 분야도 희망적이다.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전압증폭기.카메라, 휴대전화 숫자 입력기에 빛이 들어오는 다이오드 등 우리의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생명과학 분야도 우리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사업이다. 질병의 원인을 신속하게 알려주는 유전자칩, 신약개발 시스템 등은 애질런트를 이끌 미래 유망산업이다."

-R&D에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다.

"'화이트 필드 연구'가 그것이다. 특정한 연구주제나 개발 아이템을 지정하지 않고 각 분야의 연구원들이 공동으로 연구하는 방식이다. 중앙연구소 250여명의 연구인력에 매년 30%의 화이트 필드 연구를 지시하고 있다. 성과 또한 괄목할 만하다. 2002년 매출의 약 70%가 화이트 필드 연구 성과물에서 비롯됐다. 붉은색 빛을 내는 광마우스도 생화학자가 개발을 주도했다."

-당신의 경영관은.

"기업은 하나의 팀이다. 팀이 시장에서 승리할 때 기업은 발전할 수 있다. hp 창업자인 빌 휼렛은 "직책보다 중요한 것은 팀"이라고 말했다. 최고경영자(CEO)가 직원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직책은 중요도 면에서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에는 노조가 없는데.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단 급여 자체가 업계 최고 수준이다. 복리후생 또한 다른 회사 직원들이 부러워할 정도다. 이 같은 근무환경은 전 세계 30여개국의 현지법인 직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선 임시직을 폐지하라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거세다.

"임시직은 기업이 경기 사이클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임시직이 없어지면 경기가 상승할 때 인력을 갑자기 늘려야 하고, 경기가 안 좋아지면 대부분을 해고해야 한다. 애질런트는 임시직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면서 최고의 보수를 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만 고용의 안정을 보장하지 못할 뿐이다."

-한국의 IT산업을 어떻게 보나.

"한국은 세계 CDMA시장의 '시험대(testbed)'였다. 뛰어난 인터넷 인프라와 앞선 휴대전화 기술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왔다. 특히 3세대 통신에서는 한국이 가장 앞서 있다. 앞으로 무선통신시장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한국 IT산업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또 한국에 투자할 계획이 있는지.

"싱가포르에 비해 30% 이상 높은 법인세 등을 줄여주는 등 세제 지원에 적극 나섰으면 한다. 특히 R&D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과 인도에 대한 투자에 주력하고 있어 아직 한국에 대한 추가 투자계획은 없다."

-한국의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조언해준다면.

"미국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어렸을 적에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로는 좋은 선생님이 첫 영감을 주기 때문에 교사에 대한 투자도 매우 중요하다. 음악과 미술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창의성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여름학교.인턴사원제 등을 통해 기술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기업의 모습을 지켜보며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미국 팰러앨토)=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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