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歐美 진보주의 퇴색 '양날의 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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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영국은 (의회)민주주의의 어머니고,이 민주주의를 퍼뜨리는 것은 미국의 운명이다.』 영.미 정치가 세계에 미치는 힘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 「굿바이 진보주의,헬로 경영주의」로 요약되는 영.미 정치의 새 흐름(본지 10월29,31일자 9면 보도)은 우리 정치에 시사점을 던져주면서도 한편으론 경계를 요하는 「양날의 칼」이다.한쪽날은 이제 갓 자라난 진보이념과 이에 따른 복지등의 싹을 잘라낼 수 있는 위험한 것인 반면 다른 쪽은 우리 정치의 암적인 「비효율」을 도려낼 수 있는 보도(寶刀)인 것이다. 우선 영.미에서 복지 확대의 이념적 기초가 됐던 진보주의의퇴조가 우리의 열악한 복지 인프라를 더 허약하게 만드는 논리가돼선 안된다.영.미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 이상향을 꿈꾸며 수십년동안 진보주의를 한껏 꽃피웠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전체예산중 사회보장예산 비율이 영국은 35%,미국은 28%나우리는 6%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 정치가 최근 내리막길을 걷는 경제와 안보문제로 인해 보수 일변도로 흐르고 있어 복지뿐만 아니라 통일논의.여성권리.인권등에서도 영.미의 흐름을 받아들이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한편 이념보다 공공부문의 효율적 관리에 초점을 맞춘 「경영주의」는 정책의 U턴이 많고 국회가 걸핏하면 공전하는 우리의 「낭비형」 정치가 배워야 할 부분이다.
문민정부가 「작고 강한 정부」를 천명하고 3년 사이에 공무원을 4만명이나 늘린 것은 비효율의 단적인 사례이다.
경영주의로 무장하는 구미 지도자는 집안살림을 탄탄하게 다지면서 공세적 통상정책을 펼게 뻔하다.21세기를 앞두고 국내 정치의 경쟁력이 다시 강조돼야 하는 까닭이다.
이영렬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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