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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器商과검은돈>2.한件 잡으려 5년 功들이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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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피땀어린 방위세다.한푼이라도 아껴 쓰자.」 국방부등의 무기사업 부서들 벽에 걸려 있는 구호다.하지만 공염불이 된지 오래다. 무기상을 하다 4년전 전업한 예비역 대령출신의 L(54)씨.그는 무기상 하던 때를 돌이키며 넌더리를 낸다.『사령부의 한 문관은 관계자료를 가져 가면 거들떠보지도 않아요.공연히 짜증을 내고 거드름을 피웁니다.그러다 은근히 떡값을 요 구하지요.쪽 Y담당자는 더 악질입니다.』 L씨는 무기상의 적극적인 로비 못지않게 급행료와 도장료가 「공식화」된 게 문제라고 말한다.거쳐야 할 단계는 많은데 적지 않은 단계마다 「봉투」를 준비해야 하니 죽을 노릇이었다고 회고한다.무기소요를 제기하는 각 군,소요대상과 획득방 법을 결정하는 합참.국방부,군 요구성능(ROC)을 검토하는 교육사,무기성능 검사와 관계된 국방과학연구소(ADD)등을 그냥 지나치는 게 간단치 않았다는 설명이다.충직한 공직자들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돼서는 안되지만 무기상들이 크든 작든 칼자루를 쥐고 있는 부서에 끈을 대고 손을 쓰는 것은알려진 사실이다.
구멍가게 수준의 L씨 경우처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식의교제를 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중개상들이 대부분이지만 진짜 「큰 건」을 만지는 중개상들의 활동폭은 상상을 불허한다.6공시절의 차세대전투기 사업에서 드러났듯 청와대를 포함한 정.관.재계의 거물들이 망라돼 있다.6공정부가 차세대전투기로 맥도널 더글러스(MD)사의 FA-18 호넷을 선정했다가 제너럴 다이내믹스(GD)사의 F-16으로 번복하는 과정에는 백악관도 무관치 않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우리 군이 보유한 500MD 헬기의 북한수출과 관련해 한국정부의 기피회사였던 MD가 이 사업에 끼어들 때도 엄청난 로비가있었다는 후문이다.외국 대기업들은 국내 에이전트를 통해 평소 로비선을 관리한다.군내인맥 구축작업이다.
이양호(李養鎬)전국방장관의 의혹사건이 국방부 정보본부장일 때시작됐듯 거대 군수업체들은 영관장교때부터 「대상」을 관리한다.
수천만원씩 들여 보직은 물론 진급운동을 대행해 주기도 한다.한건 올리기 위해 일찍부터 공을 들이는 것이다.
대규모사업일 경우에는 아예 새 사람을 내세워 요로를 공략한다.F-16전투기 도입과정에서 GD가 당시 김종휘(金宗輝)청와대외교안보수석과 경기고 동창이던 K씨를 지사장에 앉힌 것은 대표적 예다.『얼굴로 평생을 장사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데서 나오는 것이지만 더 근본적 이유는 검은돈이 오가는 만큼 고도의 보안과 묵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무기상들이 죽기살기식으로 수주전을 벌이는 이유는 많게는 구매액의 10%에 이르는 중개수수료(커미션)에 있다.무기상 P씨는『이쪽 사회에서는 큰 것 한두 건만 하면 3대가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한다』면서 『속이 뒤틀려도 한 건을 위해 5년 넘게공들이는 것은 바로 뭉칫돈 때문』이라고 했다.
당연히 무기상들의 경쟁은 살벌하다.수년간 계속되는 한판 싸움에서 지면 끝장이다.한 관계자는 『성공하면 돈방석에 앉고 실패하면 망한다는 도박심리를 갖게 하는 구조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로비전을 부채질한다』고 말한다.무기도입 과정 에서 온갖 루머가 떠도는 것은 부패사슬 탓도 있지만 무기상들의 흠집내기 입방아에 기인한 점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문제는 로비 자체보다무기상.당국자의 커넥션으로 국고가 축나고 방위력개선사업이 개악(改惡)될 수 있는 점이다.당국자를 검은돈에 묶어 둔 무기상이업체와 짜고 무기값을 턱없이 올리는 틈이 생기는 것이다.
무기상과의 커넥션만이 아니다.제도도 문제다.첨단무기의 수명이줄어들고 기종도 수시로 바뀌는 마당에 도입완료까지 3년 넘게 걸리는 층층시하(層層侍下)의 구조를 갖고 있다(그림 참조).최신예 무기라는 게 정작 들여왔을 때는 한물간 것 이 되기 십상이다.무기도입의 체계화도 발등의 불이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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