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동물 외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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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포천시 광릉의 국립수목원에는 백두산 호랑이 세 마리가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넘긴 나이의 백두(수컷·90년생)와 천지(암컷·91년생)는 1994년 한·중 정상회담 때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다. 주룽지 전 총리가 기증한 2001년생 두만이는 함께 온 암컷 압록이가 신장병으로 숨지는 바람에 짝을 잃은 신세다. 수목원 측은 호랑이들에게 ‘비아그라’(발정제)를 먹이고 비디오를 보여주며 시청각 성교육까지 해봤지만 안타깝게도 놈들은 종족 번식에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정상회담에서 동물을 선물하는 관행은 중국 외교의 특징이다. 광대한 국토에 서식하는 진귀한 동물을 외교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에 호랑이를 보낸 것과 달리 중국을 대표하는 동물 외교관은 판다 곰이다. 1972년 죽의 장막을 열어젖히고 베이징을 찾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준 선물은 대나무 잎을 즐겨 먹는 판다 한 쌍이었다. 이후 일본·프랑스·영국·서독·멕시코 등에 보낸 수교 선물도 판다였다. 옛 소련과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에 선물하던 관행이 서방 진영으로 확대된 배경에는 판다 한 마리가 외교관 백 명의 몫을 톡톡히 한다는 중국 정부의 셈법이 있었을 것이다. 1982년부터는 야생동물의 거래를 금지하는 워싱턴 조약에 따라 기증에서 대여로 방식이 바뀌었다. 받는 측은 동물보호기금 등 명목으로 한 쌍에 연간 약 10억원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그 때문에 선물로서의 의미는 퇴색하고 말았다.

엊그제 중국산 따오기 한 쌍이 경남 창녕군 우포늪에 도착했다. 이 역시 후 주석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기증을 약속한 것이다. 중국 산시성이 고향인 이 따오기는 현지까지 맞으러 간 경남도지사의 수행 속에 전세기를 타고 오는 국빈 대접을 받았다. 당국은 이를 모태로 한반도에서 멸종된 따오기를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에선 1999년 중국으로부터 선물받은 따오기 한 쌍을 현재 100여 마리로 불린 전례가 있으니 동요 제목으로만 기억하던 따오기를 한반도 상공에서 다시 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번식에 실패한 수목원의 백두산 호랑이와 달리 따오기는 꼭 새 보금자리에서 대대손손 번성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중국의 선물이 더욱 빛이 난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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