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식품이야기] 곶감 하나 먹으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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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호 15면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감 고장의 인심(순박하고 후한 인심)’ 같은 속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요즘 제철을 맞은 감은 우리에게 친숙한 과일이다. 하지만 서양에선 인기가 별로 없다. 떫은맛을 꺼려서다.

감은 크게 보아 떫은 감과 단감, 두 종류가 있다. 감나무에 달린 상태에서 익는 도중 떫은맛이 없어져 따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 단감이다. 반면 수확한 뒤 인위적으로 떫은맛을 없애 줘야 하는 감이 있다. 이 중 우리 조상이 즐겨 먹은 것은 떫은 감이다. 중국인도 떫은 감을 선호한다. 단감은 일본에서 왔다. 일본엔 단감뿐이다.

감은 여느 과일과 달리 신맛이 없다. 브릭스(Brix) 당도계로 잰 감의 당도(단맛)는 15∼18로, 포도보다는 낮지만 사과·배보다는 높다. 감 고유의 떫은맛은 녹차에도 있는 타닌의 맛이다.

타닌은 상당한 약성(藥性)을 지녔다. 민간에선 설사·배탈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감을 권했다. 타닌이 장의 점막을 수축시켜 설사를 멈추게 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지혈 작용을 해 위궤양 치료에도 유익하다. 그러나 감을 과다 섭취하면 위에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수용성인 타닌은 다른 성분과 잘 반응한다. 특히 철분과 결합, 체외로 함께 빠져나간다. 빈혈 환자나 몸이 찬 사람에게 감 섭취를 제한하라고 권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타닌은 또 장운동을 억제한다. 따라서 변비 환자는 감 섭취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우리 고유의 떫은 감을 달게 만들려면 꼭지에 침을 놓은 뒤 따뜻한 소금물에 담가 둔다(탈삽 감, 담은 감, 삭힌 감). 홍시(연시)나 곶감으로 만들어도 떫은맛이 사라진다. 항아리에 짚을 깐 뒤 여기에 떫은 감을 올려놓으면 물렁한 홍시가 된다. 떫은 감의 껍질을 벗긴 뒤 꼬챙이에 꿰어 말린 것이 곶감이다.

요즘은 더 간단히 떫은맛을 없앤다. 떫은 감을 빈 상자에 놓고 그 위에 신문지를 몇 장 깐 뒤 사과 껍질을 올려놓으면 금세 홍시로 변한다. 사과에서 나온 에틸렌이 감의 숙성을 촉진하고 사과의 사과산과 감의 타닌이 중화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에탄올과 물을 반씩 섞은 뒤 떫은 감의 꼭지 부분이 젖을 만큼 스프레이로 뿌려 주는 방법도 있다. 이어서 비닐봉지에 넣어 따뜻한 방에 사나흘 놓아 두면 떫은맛이 제거된다. 에탄올 대신 소주를 써도 되나 시간은 조금 더 오래 걸린다.

곶감은 바싹 말린 건시(乾), 반쯤 말려 냉동 보관해 먹는 반건시(半乾)로 분류된다. 곶감은 냉동실에 넣으면 1년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 민간에선 숙취·기침·딸꾹질 환자에게 곶감을 추천했다. 곶감의 표면에 묻은 흰 가루는 감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단맛이 농축된, 포도당·과당·만니톨의 결정체다.

감은 숙취 해소용 과일로도 유명하다. 감에 든 과당이 알코올 분해를 돕고 칼륨이 이뇨작용을 한다. 중국의 의서 『명의별록』엔 “잘 익은 감은 술을 해독하고 위장의 열을 내린다”고 기술돼 있다.

감나무는 열매뿐 아니라 나무·잎도 요긴하게 쓰인다. 골프채의 헤드 부분은 감나무로 만든 것을 최고로 친다. 감잎은 비타민 C·폴리페놀이 풍부해 항산화 효과를 지닌다. 잘게 썬 감잎을 물에 넣어 우리거나 가볍게 끓이면 감잎차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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