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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궁지 몰리면 '사건' 만들어 위기 돌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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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은 사건을 고의적으로 일으키고 협상이 유리해질 때까지 지연전술을 쓰며 어떤 합의도 계획적으로 위반하기를 능사로 한다.』 한국전쟁 당시 정전회담 유엔군측 수석대표로 10개월간 협상에 나섰던 터너 조이 제독이 그의 저서 『공산주의자들의 협상』에서 밝힌 경험담이다.
북한은 실제 한국전쟁이후 지금까지 이같은 수법을 되풀이 해왔다.국면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사건」을 만들어냈으며 끈질긴 협상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왔다.북한은 「불리한 사건발생→국면전환용 계기(간첩행위)→협상 제의→협상장소및 시간 일방적 선정→지연전술및 협박→협상종결」의 과정을 밟아온 것이다.그들의 벼랑끝 전술이 상당히 먹혀 든게 사실이다.
강릉침투 무장공비 수색이 진행중이던 지난 6일 북한이 미국인에번 칼 헌지커(26)가 한국을 위해 첩보활동을 했다고 전격 발표한 것도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북한이 이처럼 국면전환을 위해 「간첩행위」를 이용한 대표적인사례로는 지난 68년 푸에블로호 사건과 94년 미군헬기 격추사건을 들수 있다.푸에블로호 사건은 청와대에 대한 북한 무장공비기습사건이 발생한지 이틀만인 68년1월23일 일어났다.북한은 승무원 83명(1명은 현장에서 사망)을 모두 수감했고 다음날 로이드 부커 함장을 위협,영해침범과 간첩행위를 인정하는 라디오방송을 하도록 했다.
정전위 본회의를 통한 미측의 승무원.선박 송환을 거부한 북한은 영해침범 인정및 사과,재발방지를 석방조건으로 내걸었다.
북한은 한술 더떠 3월4일 억류된 승무원 82명 전원 명의로미국이 북한측 요구를 들어줄 경우에만 석방될 수 있다는 요지의탄원서를 전달했다.
결국 미국과 북한은 판문점에서 11개월간의 지루한 협상끝에 12월22일 북한측 요구를 대폭 수용한 합의문에 서명했다.어찌됐든 북한은 이 사건을 통해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에 따른 국제적 비난여론을 희석시키는 한편 한반도 긴장이 주한 미군 철수를통해 완화될 수 있다는 여론을 조성했다.
지난 94년12월 발생한 미군헬기 격추사건은 북한이 단순 월경(越境)사건까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여 줬다.북한은 12월17일 미군 OH-58헬기 1대의 격추사실을 보도하면서 사고헬기가 월경직후 원래의 비행행로를 되찾아 북한지역에 서 벗어나려다 피격당한 사실을 들어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당시 방북중이던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민주.뉴멕시코)을 통해 사망한 하일먼 준위의 시체를 넘겨줌으로써 인도주의 측면을 강조했다.이어 판문점에서의 북.미 장성급 접촉을 통해 게리 럭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헬기사건 사과및 재발 방지 표명(12월24일)을 받아냈으며 토머스 허바드 미국무부 부차관보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생존조종사 보비 홀 준위를 넘겨주었다(12월29일).물론 홀준위의 북한영공을 침범했다는 자백서를 공개했다.북한은 이 사건을 북.미간 고위군사채 널 개설과 평화협정 체결공세에 철저히 이용했다.
이같은 수법을 고려할 때 북한은 헌지커를 계속 억류하면서 국면전환용으로 활용할 것이 분명하다.
김성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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