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한글날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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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프랑스어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세상 모든 언어가운데 가장 논리적이고 정확한 언어가 프랑스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어가 아니다』고 할 정도다.
「프랑스어 지키기」는 프랑스 문화정책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어문정책의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프랑스어 사용권(圈) 최고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으로 돼 있다.초.중.고등학교에선 수업시간의 40~17%를 국어교육에 배당해 읽기.말하기 .쓰기를 철저히 교육한다.일반인들을 위해선 국제프랑스어센터가 어휘와 철자법,프랑스어 낱말연맹이 신조어(新造語)관리를,그리고 언어순화는3백년 역사의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맡는다.프랑스어 보급은 1883년 설립된 알리앙스 프랑세즈가 맡 고 있는데,세계 1백20여개국에 6천여명의 교사가 파견돼 있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영어 패권주의(覇權主義)의 공세를 어떻게 막느냐가 국가적 과제로 대두됐다.공세는 두방향에서 이뤄지고 있다.하나는 비즈니스 분야,다른 하나는 대중문화다.프랑스 기업들 사이에 선 프랑스어사용을 사업의 장애요소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영어를 모르면 취직을 못하고 비즈니스를 할 수 없게 됐다.대학생들이 졸업후 영어연수를 떠나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대중문화쪽은 더욱 심각하다.미국 연예.오락산업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할리우드 영화등쌀에 프랑스 영화산업은 빈사상태며,TV에서도 미국 프로가 인기다.또 샹송 대신 미국 팝뮤직이 판을 친다.프랑스 정부는 무분별한 영어사용을 막기 위해 「프랑스어보호법」까지 마련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영어 패권주의는 최근 정보화 바람을 타고 전세계를 석권하고 있다.미국은 세계 소프트웨어시장의 75%를 차지하며,정보통신시스템에 축적된 정보의 8할이 영어다.이같은 상황에서 자국어(自國語)지키기 운동은 외국어 남용 막기식으로 소극적 이어선 안된다.시대변화에 따라 새말을 만들어내는 조어(造語)능력을 갖추는적극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오늘은 5백50돌 한글날이다.창제(創製)당시 한글은 시대를 앞서가는 과학정신의 산물이었다.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바로 한글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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