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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 엄마” 청각장애아 입 떼자 의사도 ‘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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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저를 통해 말문을 연 아이들, 이를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엄마들 덕분에 한국에서의 하루하루가 행복했어요.”

8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글로리아 마모킨(62·사진)이 가방에서 낡은 흑백 사진 수십 장을 꺼냈다. 39년 전 이 병원에서 언어치료사로 봉사하며 만났던 한국 청각 장애인과 가족들의 사진이다.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3년간 한국에 머물렀던 그는 최근 정부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1969년, 당시 23살이었던 마모킨은 언어치료사였다. 그는 원래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기내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인 선교사의 말에 계획을 바꿨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청각장애 교육의 현실을 전해 들은 것이다. 당시 국내에선 손짓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수화만을 가르쳤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이미 입 모양을 보고 훈련해 직접 말을 하는 구화 교육이 대세였다.

한국에 도착한 마모킨은 무작정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갔다. ‘청력을 잃은 아이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겠다’라는 20대 미국 여성의 당찬 태도에 병원 측은 처음엔 당황했다. 병원 측은 그에게 공개 시연을 요청했다. 이튿날 시연이 열린 강의실엔 의사 50여 명이 왔다. 마모킨 씨는 청각 장애를 가진 일곱 살 장두영 군에게 자신의 입 모양을 보고 따라하도록 가르쳤다. 장 군은 푸른 눈의 외국인이 신기한 듯 바라보기는 했지만 입은 좀처럼 열지 않았다. 그러자 마모킨 씨는 함께 있던 장 군의 어머니를 강의실 밖으로 내보냈다. 장 군은 곧 “어…어마(엄마)”하고 입을 열었다. 의구심을 품고 지켜보던 의사들 사이에 탄성이 터졌다.

다음날부터 마모킨은 세브란스 병원으로 출근했다. 병원 측은 그의 도움을 받아 언어교정실(현 음성언어의학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한국 최초의 언어치료센터였다. 세브란스는 지금도 언어치료에 강한 병원으로 통한다.

그는 세브란스 병원과 서울대 병원을 오가며 청각 장애인에게 구화를 가르쳤다. 구순구개열(‘언청이’) 증세로 말이 서툰 어린이나 실어증에 빠진 베트남전 참전 군인도 그의 도움을 받았다. 대구·전주 등의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언어 치료법을 알렸다. 미국 정부를 설득해 애초 중국에 기증하기로 한 청각실습 기기 2대를 한국으로 들여오기도 했다. 마모킨으로부터 교육받은 뒤 언어치료사로 활동했던 김선희(63·여)씨는 그를 “한국 언어치료의 씨앗을 뿌린 분”으로 기억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의 한국 사랑은 이어졌다. 한국정신애호협회의 미국학교 방문을 돕는 등 민간 교류의 산파 역할을 맡았다. 89년엔 한미교육자협회의 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이날 세브란스병원이 마모킨에게 선물한 이비인후과 연감에는 그의 이름과 사진이 올라 있었다. 이름 옆에는 ‘한국 언어치료의 도입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마모킨은 “40년 전엔 나 같은 미국인들이 한국으로 봉사를 왔는데 이젠 한국인들이 세계 각지에서 봉사하고 있다. 한국의 발전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평화봉사단=1960년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창설했다. 미국의 젊은이들을 개발도상국으로 보내 봉사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한국에는 66~81년까지 3200명이 다녀갔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도 평화봉사단원으로 충남 예산의 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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