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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수 시시각각

진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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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삐 풀린 말처럼 내달리던 미국발 금융위기가 일단 진정 국면에 들어선 모습이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던 각국의 주가가 일제히 큰 폭으로 올랐고 잔뜩 움츠러들었던 국제 금융시장에도 슬슬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장 모르고 치솟던 원-달러 환율이 거꾸로 수직 하락하면서 외환위기의 쓰나미가 일순 잠잠해졌다. 단정하긴 이르지만 국제금융시장을 혼돈의 끝으로 몰고 간 공황심리의 광풍은 일단 고삐가 잡힌 듯하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혼란이 가라앉았다고 해서 위기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부터 진짜 위기가 오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실물경제의 장기 침체와 우리 내부에 잠복한 금융위기의 가능성이다. 세계경제의 침체는 이제 단순한 예상이 아니라 피치 못할 숙명처럼 다가오고 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쑥대밭이 되고 부동산 등 자산가치의 버블이 일순간에 꺼지면서 세계경제는 침체의 긴 터널에 들어섰다. 투자와 소비는 줄어들 것이고 실업자는 늘어날 것이다. 당연히 경제성장은 지체되거나 후퇴할 것이다. 금융위기의 융단 폭격으로 자산가치가 반 토막 난 마당에 손에 쥐는 소득마저 줄면 지출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건은 안 팔리고 기업의 수익은 악화될 것이다. 그러면 문 닫는 기업이 속출하고 실업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바야흐로 축소지향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정부에는 안된 이야기지만 세계경제의 침체는 곧장 국내경기의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를 살린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전 세계가 침체 국면에 돌입한 마당에 우리만 살짝 침체에서 벗어날 재간은 없다. 수출이 둔화되고 내수 부진의 골은 더 깊어질 것이다. 그 와중에 체력이 허약한 중소기업과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숱하게 나가떨어질 것이다. 당연히 실업이 늘고 소비자의 지갑은 얄팍해질 수밖에 없다. 장기불황이라는 고난의 시기가 막 시작될 참이다.

이 암울한 전망에 불안감을 더하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 피어오르는 금융위기의 불씨다. 미국 금융위기의 시발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상징되는 부동산 버블의 붕괴였다. 유럽에서 금융위기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곳도 부동산 버블이 극심했던 아일랜드·아이슬란드·스페인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거품도 이에 못지않다고 본다. 다만 담보인정비율(LTV)과 소득대비대출한도(DTI) 등의 규제로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처럼 집값에서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해외 부동산 버블 붕괴의 영향이 가시화하면 국내 부동산 값은 언제든지 폭락할 위험이 내재돼 있다. 부동산 값이 더 오를 가망이 없는 가운데 대출 원리금 상환능력이 한계에 이를 경우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후순위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준 제2금융권 금융회사들부터 부실이 드러나면서 금융권 전체가 유동성 위기의 폭풍우에 휘말릴 수도 있다. 달러 기근과 환율 급등이 외부에서 비롯된 위기라면 국내 부동산 가격의 급락은 우리 내부에서 키운 위기다. 이미 지방에 산처럼 쌓인 미분양 아파트로 건설사들의 도산이 줄을 잇고 여기에 돈을 댄 지방 금융회사들이 부실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용카드 연체율이 높아지는 것도 불길한 징후다. 위기의 기운이 도처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 만큼 외환위기의 우려가 가셨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외부로부터의 위기가 다소 진정된 지금부터 내부의 진짜 위기를 다스려야 한다. 경기침체는 당분간 어쩔 수 없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견디는 수밖에. 대신 정부는 고도성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경기침체의 파장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부동산 버블은 신중한 자세로 대처해야 한다. 주택 500만 채 공급 같은 터무니없는 정책을 버리고 거품을 살살 빼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외면하거나 피하기에는 내부의 위기가 너무 가까이 다가왔다.

김종수 논설위원

[이슈] 미국발 금융 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