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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1만km를가다>8.聖湖 당러융춰 비경에 압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성호(聖湖)당러융춰(當惹擁錯)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니마(尼瑪)를 출발해 당러융춰로 향한 탐사 지프를 따르던 지원 트럭이 강가 모래밭에 틀어박혔다.빠져나오려고 시도해봤지만 헛바퀴 소리만 요란할 뿐 트럭은 모래밭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름길로 간다는 것이 오히려 시간을 더 잡아먹게 됐다.
이미 안둬(安多)에서 두차례 탐사 차량이 진흙탕 길에 빠져 곤욕을 치른바 있는 탐사팀은 트럭바퀴 주위를 삽으로 파고 돌을괸 뒤 지프로 끌어보았지만 바퀴자국만 파일 뿐 허사였다.
때마침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가 모래를 흥건히 적셔 자력 탈출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프를 몰고 니마로 돌아가 중국돈 3백위안(약 3만원)을 주고 「구원 트럭」을 불러온 뒤에야 모래밭에서 빠져나올 수있었다. 지름길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길로 접어든 탐사팀은 해 떨어지기 전에 당러융춰에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점심도 거르고 갈 길을 재촉했다.
전날 니마까지 오는 도중 차량을 세대밖에 보지못했던 탐사팀은당러융춰로 가는 길에는 한대도 볼 수 없었다.대신 야생당나귀.
영양(羚羊)등 동물들이 탐사팀을 반겨주었다.
탐사팀은 가는 길이 험했지만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라싸(拉薩)에서 만난 서장대 생물학과 쭝츠런(琮次仁)교수가 『창탕고원의성호 당러융춰는 외국인으로는 세계 최초의 방문』이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초원을 달리다 산양 두마리가 뛰어노는 가파르고 좁다란산언덕을 넘자 그림 같은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당슝(當雄)마을이었다.
30호남짓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 저편 설산이 마을 앞 호수에 그대로 투영된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당슝 마을 앞 호수를 끼고 돌아 벌판으로 접어드니 뛰노는 영양이 탐사차량 소음에 놀라 달아나기 바빴다.
당슝에서 당러융춰로 찾아가는 길은 아무도 찾아본 흔적이 없는「원시 상태」그대로였다.
마침 석양이 비추는 회갈색의 민둥산과 반대편 초원의 응달이 만든 조화가 태고의 신비를 연상케 했다.
게다가 멀리 보이는 설산에는 눈과 구름이 걸쳐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초원 너머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당러융춰는 태고의 신비를 더해주었다.당러융춰의 둘레는 1백40㎞.티베트에서 세번째로 큰 호수인 당러융춰는 두가지의 신비한 전 설이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스코틀랜드의 네시처럼 전설적인 괴물이 살고 있어 호숫가에 불시에 나타나 물을 먹는 야크를 단숨에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전설은 당러융춰가 1천5백㎞ 이상 떨어진 티베트의 또 다른 성호 마팡융춰(瑪旁擁錯)와 지하로 물이 흐르는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당러융춰 호숫가 마을인 원부샹(文布鄕)마을 주민들에게 확인해본 결과 이를 사실로 믿고 있지는 않았다.원부샹 마을은 인구 8백명이 모여 사는 규모가 적지않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티베트인이 아닌 문명세계의 외지인을 처음 본 주민들은탐사팀이 마을로 들어서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모여든 주민들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기도바퀴」마니퇴를 돌리는 할머니부터 코흘리개 꼬마까지 모두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외지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눈길을 뗄줄 몰랐다.
탐사팀이 민박지로 정한 집 앞은 삽시간에 문전성시를 이뤄 출입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민박집 주인은 둘러앉은 손님에게 버터차인 수유차를 연신 권했다.비릿한 맛에 한잔을 채 비우지 못하자 주인장은 수유차를 다시 따라주었다.
탐사팀의 피로를 풀어주려는 배려에서 나온 것이나 탐사팀이 티베트에서는 수유차 찻잔을 비워야 그만 달라는 뜻이라는 것을 몰라 억지로 두잔 이상씩 마셔야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마을 언덕을 내려와 근거리에서 바라본 당러융춰는 호숫가 산세 너머 비치는 아침 서광을 받아 더욱 신비해보였다. 손가락을 담가 물맛을 보니 짠 맛이었다.티베트 대부분의 호수처럼 당러융춰도 염호(鹽湖)였다.
탐사팀은 호수의 깊이는 얼만지,호수에 사는 물고기는 어떤 종류인지 떠오르는 의문을 다음 탐사팀의 몫으로 돌린채 당러융춰와아쉬운 작별을 하고 발길을 돌렸다.
당러융춰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강하게불어닥치는 가운데 탐사 차량의 타이어가 펑크나는 바람에 갈때 못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당러융춰를 오가는 동안 겪은 어려움은 티베트의 성호를다녀왔다는 뿌듯함에 묻혀버렸다.
고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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