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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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03면

소암(素菴) 현중화(1907~97)는 평생을 ‘먹고 잠자고 쓰고’로 일관한 서예가다.
고향인 제주도 서귀포에 눌러앉아 자연을 벗 삼아 제자를 기르며 오로지 글씨 쓰는 일로 한세상을 보냈다. 20세기 한국 서예사에 ‘서귀포’란 지명을 큼직하게 찍고 간 고인의 삶을 기려 제주특별자치도가 선생의 행적이 그대로 살아 있는 집터에 소암 기념관(설계 김상언)을 지었다.

울림과 떨림 -한 주를 시작하는 작은 말

한국 서예가의 개인 미술관으로 첫걸음이란 뜻도 깊다.
소암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건너가 글씨를 배웠다. 선생은 회고하기를 서예가가 되고자 글씨를 공부한 것은 아니라 한다. “이 글씨로 일본을 이겨야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고, 일본을 이길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던 거지요. 그래서 글씨로 독립운동을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소암의 글씨는 야성미가 넘친다. 기념관 너머 서귀포 앞바다에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비정형(非定型)의 역동적 동세(動勢)가 뛰어나다. 그의 글씨는 살아 움직이며 시대와 함께 간다.

개관 기념으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취필(醉筆)’ 한 부분은 소암이 평소 글씨 쓰던 서실을 재현해 놓았다. 그곳에 걸려 있는 ‘X O 뿐’(사진)은 1980년 ‘광주 데모 때 그날’이란 글을 붙이고 있다. 소암은 핏빛으로 물든 야만의 시절을 바라보며 붓을 들었다. “세상은 X 아니면 O, 이쪽 아니면 저쪽을 고르라 윽박지르니 이를 어찌할꼬.” 거칠기 그지없는 갈필이 찢어지는 그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변방에 엎드려 ‘먹고 잠자고 쓰는 것밖에’ 모르던 서예가가 시대를 기록한다.

세상은 여전히 ‘X O 뿐’인가. 소암은 글씨로 일본을 이기고, 그를 통해 중국까지 아우르며 동양 3국의 서예계를 평정하고자 뜻을 세웠다. 이제 글씨가 남아 그 정신을 전한다. 문의 064-760-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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