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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켄트교수는 눈을 감고 있었다.을희의 눈부신 육체를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아니면 자신의 볼나위 없는 「남성」을 드러내 보이는 부끄러움을 견디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가 어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알 수 없었다.어떻든 을희의 성의를 받아준 것이 고마웠다.
옷이란 수치심의 가리개인가.훌훌 벗고 알몸이 되고나니까 오히려 담대해지고 당당했다.
을희는 의사를 닮은 손짓으로 그의 옷을 벗겼다.
수척해 보이는 두 뺨이나 길고 깡마른 손가락과는 달리 그의 몸매는 뜻밖에 단단했다.상체에 비겨 다리만 눈에 띄게 가늘었으나 허하지는 않았다.…몸가락도 정상으로 보였다.
『보행기로 날마다 걷는 연습을 하십니다.오신다는 얘기를 들으신 후로는 더욱 열심히 하셨어요.』 딸의 말대로 열심히 훈련을해온 덕일까 동작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외엔 정상인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훌륭해요.빨리 자유로워지셔서 저에게 또 춤을 가르쳐주세요.
아니,곧 자유로워지실 거예요.자유로워지시고 말고요.이렇게 튼실한 몸인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얼른 샤워를 틀었다.온몸에 물비누칠을 하여 정성스레 문질렀다.발가락과 몸가락까지도. -아,이 몸가락이 둥근 보름달처럼 돋아오르면 얼 켄트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을희는 기도를 담아 부드럽게 부드럽게 훑었다.그러나 끝내 달은 돋지 않았다.절망감으로 억장이 무너지듯했다.젖가슴으로 비비며 얼 켄트의 몸에 자기의 육체를 포개어 이리저리 굴렸다.
물침대는 두 사람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덧없이 쿨렁거렸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왜 섹스가 필요한지 몸저며 느꼈다.두 몸이 한 몸임을 확인하는 일체감이 필요한 것이다.그래서 삽입이온전하도록 남녀의 육신은 오묘한 요철(凹凸)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펑펑 울며 몸을 비비다 홀연히 깨달았다.켄트교수는 자신의 육신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을희의 집념을 지우려 한 것은 아닐까,섹스하지 못하는 남녀간의 사랑이 얼마나 뼈아프도록 허망한 것인지 일러주기 위해 알몸이 되어 보이지 않았는가.그 깨우침으로 가슴이 더욱 아팠다.
차라리 단 한번이라도 그와 육신을 나누었더라면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을 것같았다.그러다 또 한번 깨달았다.있는 그대로의 얼켄트를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이 육신의 불모(不毛)에서 정신의 싹을 돋게 하는 것이 「참사랑」 이라는 것을….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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