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하루 새 235원 요동 … 외환시장 현기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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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외환시장에 원-달러 환율이 70.5원 급락한 데엔 환율을 끌어내리기 위한 외환·금융 당국의 초강수가 먹혀들었기 때문이란 게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환투기 세력 적발을 위한 외환 거래내역 조사 확대, 달러를 과잉 보유한 수출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달러 매도 요구 등이 이어지면서 급등하던 환율이 급락세로 반전된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 같은 비시장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외환시장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날 환율 급락에도 불구하고 경상수지 적자, 시중 달러 고갈 등 그동안 환율 급등을 초래했던 경제 여건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 환율은 불안정한 움직임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게다가 정부의 비시장적 조치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감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날 금융감독원은 13일부터 모든 은행의 외환거래 내역을 보고받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지금도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은행 간 거래 내역을 보고받고 있지만 금감원의 조치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갔다. 은행 간의 거래 내역은 물론 매도·매수 주문을 누가 냈는지도 보고받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출입을 통해 많은 달러를 가지고 있는데도 실제 시장에서 거래가 적은 기업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조영제 금융감독원 외환업무실장은 “환투기 여부 등을 조사해 왔지만 거래 내역이 불충분해 충분한 조사를 할 수 없었다”며 “거래내역을 모두 받게 되면 관련 조사가 좀 더 정밀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또 외환딜러들의 위법 거래 여부와 관련, 서면조사를 마친 데 이어 곧 현장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한승수 국무총리(中)가 10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경제상황점검회의에서 제63차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그룹(WBG) 합동 연차총회에 참석하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左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右)에게 금융협조체제 구축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달러를 많이 가진 수출기업에 대한 정부의 압박도 세지고 있다. 전날 기획재정부는 수출기업의 외화담당자들을 직접 만나 과잉 보유 달러를 시장에 팔 것을 요구했다. 8일 이명박 대통령이 “달러 사재기를 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조치 이후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포스코·현대자동차 등이 잇따라 달러를 시장에 팔면서 환율 하락세를 이끌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금감원의 거래내역 보고 조치 이후 환율이 급락했다는 것은 투기를 포함한 과잉 수요가 외환시장에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 조치만으로는 외환시장이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단언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비록 9, 10일 이틀간 환율이 하락했다고 하더라도 하루 환율 변동폭이 235원에 이를 정도로 시장이 극도의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SC제일은행 전종우 상무는 “환율의 단기적 안정세는 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담 등에서 강도 높은 대책이 나올 것인지가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 안정을 위한 당국의 비시장적 조치가 불러올 부작용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금감원의 거래내역 보고 조치가 외환시장의 통제를 의미하는 것이냐며 불안해하는 외국인 투자자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며 “심지어 지난해 11월 외국자본의 유출을 금지한 태국 정부의 조치를 한국도 시행하느냐고 물어 당혹했다”고 말했다. 투자자의 거래 내역을 일일이 파악하는 것은 국제적 관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조영제 금감원 실장은 “시장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감독당국의 감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나라가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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