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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환율 충격’ 외환위기 때보다 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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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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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증시, 공포의 전염=9월 15일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보호 신청을 내고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당하자 미국 금융위기는 단번에 세계로 확산했다. 미국 금융회사에 이어 유럽 금융회사도 파산위기에 몰렸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의 공조가 나오면서 세계 증시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뉴욕 증시의 움직임이 밤 사이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진 뒤 뉴욕으로 이어지는 ‘24시간 릴레이’ 장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주말마다 각종 대책을 마련해 월요일 아시아 증시가 열리기 전에 발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투신운용 양정원 상무는 “세계 증시가 동조화하면서 뉴욕 증시의 극단적인 공포심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전염됐다”며 “한국과 일본처럼 상대적으로 경제의 기초체력이 괜찮은 증시도 뉴욕의 입김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 한은의 금리 인하로 안정될 조짐을 보였던 국내 증시의 투자심리가 이날 갑자기 얼어붙은 것도 뉴욕 증시의 여파였다. 동양증권 서명석 센터장은 “한국 정부의 노력만으로 국내 증시 안정에는 한계가 있다”며 “세계 각국의 공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환율에 휘둘린 국내 증시=뉴욕 증시의 공포감에 더해 국내 증시를 짓누른 악재는 환율이다. 환율의 입김이 강해진 건 외국인투자자의 매도 공세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세계로 확산하자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팔아 달러로 바꿔 빼갔다. 이게 환율을 끌어올리자 원화 값이 더 떨어질 걸 우려한 외국인은 다시 주식을 파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이러다 보니 환율이 급등하면 주가가 떨어지고, 반대로 환율이 떨어지면 주가가 오르는 일도 부쩍 잦아졌다. 환율과 주가가 정반대로 움직이는 역상관관계가 외환위기 때보다도 강해졌다. 1997년 환율과 주가가 거꾸로 움직인 날은 전체 거래일의 59%였다. 이게 올해는 64%로 늘었다. 그만큼 환율과 주가가 반대로 움직인 날이 많았다는 얘기다. 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연구위원은 “상반기까지는 외국인 주식 매도가 환율 상승을 부추겼으나 최근엔 환율 급등이 한국의 외환위기 우려를 높여 외국인의 한국 탈출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율 급등세를 진정시키지 못하면 외국자본의 이탈이 더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경민·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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