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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제약사 되려면 마케팅 능력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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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의 과학기술이 고부가가치를 내는 원천기술을 다수 확보했는지 따져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특히 신약개발 성적표는 초라할 뿐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허가를 받은 제품이 LG생명과학의 차세대 항생제 ‘팩티브’뿐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제약사 머크의 그레그 위더레트 부사장이 LG생명과학의 김인철 사장을 만났다. 8일부터 충북 오송에서 진행 중인 바이오코리아2008에서 특별강연을 위해 방한한 위더레트 부사장은 머크의 물질도입(라이선싱)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김 박사는 팩티브의 개발을 주도했고, 최근 들어 비만치료제와 간질환 치료제 등 신물질을 계속 내놓고 있다. 이들은 두어 시간 동안 한국의 신약개발 현위치와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위더레트(위)=머크는 전 세계에 신약후보 물질을 찾는 14개의 스카우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한국을 지켜보는 별도의 팀이 있다. 한국의 신약개발 수준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김인철(김)=한국의 신약개발은 대략 2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다. 지금까지 정부 주도로 신약개발을 배우는 단계였다면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시작할 단계다. LG생명과학은 1980년대부터 팩티브 개발에 착수했다. 상당히 도전적인 시도였다. 현재 시장에서 많이 쓰이진 않지만 첫술에 배부르기 힘들다.

▶위=신약 개발에 있어 10∼20년의 오랜 연구개발 기간과 높은 리스크가 가장 큰 장애물이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 그만큼 보상도 크다. 따라서 연구개발의 효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김=대부분의 미국 제약회사가 전략적 차원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약가 규제가 강해질 조짐이다. 따라서 경영전략을 바꿔 활발하게 기업 인수합병(M&A)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관건은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가치 있는 개발을 해내느냐에 있다. 한국은 기존의 서양 스타일보다는 동서양이 서로 협력하는 접근방식을 추구해야 한다. 특히 서양 기업의 10분의 1 비용으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위=연구개발(R&D) 투자 규모나 회사 규모가 얼마나 큰지가 신약개발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머크의 지난해 R&D 예산은 49억 달러였는데, 이는 전 세계 제약 부문 R&D 예산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머크가 스카우트팀을 활용하는 이유다. 스카우트할 때 머크가 추구하는 것은 회사의 사이즈가 아니다. 그 기업이 얼마나 혁신적이며, 그 분야에 얼마나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다. 지난해 머크 총 매출의 65%가 라이선싱을 통해 창출됐다. 예를 들면 전 세계적으로 17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한 자궁경부암 예방백신 ‘가다실’은 호주의 바이오벤처 기업 CSL과 라이선싱 계약을 통해 개발됐다. 영·유아 로타바이러스 장염 예방백신인 ‘로타텍’의 경우도 필라델피아 아동병원과의 협력으로 만들어졌다.

▶김=전 세계 톱10 제약 기업 순위에서 미국과 유럽 기업이 여전히 강세다. 다케다가 19위에 오른 것이 아시아 기업의 전부다. 매출이 1조5000억원 이상이 돼야 랭킹 50위에 오를 수 있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바이오·제약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중요한 것 세 가지는 특허를 따낼 수 있는 능력, 각국의 식약청에서 허가받을 수 있는 능력, 직접 세일즈와 마케팅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는 첫째와 둘째 요건까지는 왔다. 이제 마지막 요건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미국에서는 학계나 신생기업에 대한 정부보조금이 일부 존재하지만 미국에서는 주로 벤처 캐피털을 통한다. 미국의 경우 벤처 캐피털 시장이 매우 활성화돼 있다. 개인적으로 바이오 기업들이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환경은 바람직하지 않다. 견고한 벤처 캐피털 투자 커뮤니티를 통해 투자금을 확보하고, 투자금 회수 역시 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김=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은 자본시장이 딱딱하다. 따라서 정부가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특히 보상과 인센티브가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최초의 물질이나 개량신약 개발에 대한 보상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발비도 건지기 힘든 실정이다. 한국 정부는 한국 기업과 다국적 기업을 구별할 것이 아니라 제약산업 자체를 육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리=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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