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버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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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 탤런트 안재환씨, 최진실씨의 잇따른 자살을 계기로 자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우울증은 더 이상 우리 주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생소한 질병이 아니다. 최근의 대규모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4.3%가 살면서 적어도 한 번 이상 우울증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또한 최근 1년 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는 전 인구의 1.7%인 약 80만 명에 육박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울증 환자 10명 중 한 명꼴로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자살하는 사람의 약 70% 이상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통계자료를 본다면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한 질병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각종 정신장애 중 우울증은 생산성의 감소나 경제적인 손실이 가장 큰 질병이며,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장차 인류에게 경제적인 부담이 가장 클 질병 중 심장병 다음으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울증 환자가 왜 자꾸 늘어나는 것일까? 우울증은 뇌신경계의 생물학적인 이상과 관련이 깊은 뇌의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울증의 발생에는 심리적·사회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우울증의 발생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심리학적 모델로 공격성의 내향화와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한 무력감을 꼽는다.

공격성의 내향화란 밖으로 적절히 발산되어야 할 공격성이 거꾸로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으로,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일어나는 병적인 자기방어 심리기제다. 이번에 최진실씨 자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진 인터넷 악플 문제는 집단적인 공격성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집단적 공격에 아무리 억울하고 화가 나더라도 개인은 하소연할 방법이 별로 없다. 이때 격렬한 분노감정이 적절하게 표현되지 못하고 거꾸로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면 우울증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직접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많은 우울증 환자가 자기 마음속의 갈등을 주변 사람들과 적절히 나누지 못해 무척 힘들어하지만 전문적인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질병에 대한 오해나 무지도 큰 역할을 한다. 우리 주변에는 우울증 환자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아니면 정신력과 의지가 박약해 생기는 질병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아직도 의외로 많다.

우울증은 조기 발견·조기 치료가 매우 중요하며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무지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는 사람은 전체 환자의 7.4%에 불과하다는 보고도 있다.

 우울증 환자의 급격한 증가를 막고 이로 인한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우리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대중적인 계몽교육을 좀 더 강화해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 선진국의 경우처럼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공익광고를 강화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적절한 의사소통을 나눌 대상이 별로 없는 우울증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신보건센터들을 적극 활용해 자살예방 상담이나 우울증 조기 발견 및 치료를 위한 보건사업들을 적극적으로 벌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요즘 정치권에서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인터넷 악플 문제처럼 집단적 공격성과 관련되는 사회 문제를 줄이기 위한 관계 당국의 실제적인 조치도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유범희 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