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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심포니 서부개척자’ 살로넨 한국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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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에사 페카 살로넨과 LA필의 마지막 시즌은 스트라빈스키로 시작하고 끝난다. 지난 2일 LA에서 ‘불새’로 2008~2009 시즌을 시작했고, 내년 4월 19일 시편 교향곡으로 상임 지휘자 16년을 마감한다. [LA 필 제공]

 지난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월트 디즈니 홀. 2008~2009 시즌 첫 공연을 하루 앞둔 LA필하모닉(이하 LA필)의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연설은 생략하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검은 옷을 입고 리허설 무대에 오른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50)은 특유의 ‘서늘한’ 표정으로 단원과 시즌 첫 인사를 나눴다.

이 리허설은 살로넨에게 ‘마지막’ 시즌의 ‘첫’ 리허설이다. 1992년부터 16년 동안 음악감독 및 상임 지휘자로 일한 그는 내년 4월 19일까지인 이번 시즌을 끝으로 LA필을 떠난다. 차갑고 분석적인 살로넨 스타일로 연주하는 LA필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시즌이다.

“여러분 모두 음색에 대해 예민한 감각이 필요해요. 플루트는 지금, 반의 반음 정도 음정이 높은 것 같군요.” 살로넨은 꼼꼼한 지휘자라는 명성에 맞게 오케스트라 각 악기의 한 음 한 음을 지적해냈다. “제1 바이올린, 방금 그 음은 열린 소리가 아니에요. 사라지는 소리로 연주해야 돼요.” 단원 모두가 긴장했다.

살로넨은 연습 무대에서도 작은 소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2일 시즌 오프닝 무대에서 연주하는 스트라빈스키의 ‘불새’가 이날 리허설 무대에서 세심하게 다듬어졌다. 날카로운 음색과 정확한 표현은 살로넨이 즐겨 연주하는 스트라빈스키의 특징이다.

◆젊은이에 건 ‘도박’=살로넨과 LA필의 인연에는 두 명의 ‘선배’ 지휘자가 얽혀 있다. 마이클 틸슨 토머스(64)와 앙드레 프레빈(79)이다. 틸슨 토머스는 그에게 발탁의 기회를 제공했다. 83년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틸슨 토머스의 ‘결장(缺場)’ 덕에 지휘대에 오른 인물이 25세의 살로넨이었다. 이때 LA필의 경영자였던 어니스트 플라이시만이 말러 심포니 3번을 연주한 그를 눈여겨봤고, 이듬해 LA필의 객원 지휘를 맡기게 된다.

프레빈은 듣도 보도 못하던 젊은 지휘자의 발탁에 반발해 89년 LA필을 떠났다. 살로넨을 수석 부지휘자로 임명하려 했던 경영진은 살로넨에게 아예 상임 지휘자 자리를 제안했고, 92년부터 공식적인 ‘동거’가 시작됐다. 상당한 명성을 얻었던 지휘자 대신 북유럽 출신의 젊은이를 일종의 ‘도박’처럼 선택한 셈이다.

핀란드 태생의 살로넨은 “84년 LA 연주 때 처음 미국에 와봤다”고 했다. 헬싱키의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호른과 작곡을 전공한 그에게 지휘는 ‘내가 만든 곡을 연주하기 위해’ 시작한 일일 뿐이었다.

◆‘도박’이 ‘신화’로=LA필의 ‘주거지’인 월트 디즈니 홀은 ‘기부’의 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벽면에는 기부자들 수백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가 하면 카펫도 기부자의 이름을 땄을 정도다. 메인 홀의 무대는 금융회사인 ‘웰스 파고 스테이지(Wells Fargo Stage)’로 이름 붙였다.

LA필의 홍보 담당자인 리사 R 화이트는 “살로넨이 2003년 완성된 이 홀의 기부자들을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96년 파리 연주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했을 때 LA필의 이사진과 후원자들이 감동했다. ‘새 홀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살로넨의 의견이 이때를 기점으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설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월트 디즈니 홀을 발판 삼아 LA필은 살로넨과 16년 동안 ‘상생’했다. 살로넨은 동부의 입김이 거세던 미국의 오케스트라 지형도를 바꿔 ‘가끔 잘하던’ 오케스트라를 ‘항상 훌륭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2000년대 초반 난해한 현대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 페스티벌을 열어 청바지 입은 LA 젊은 관객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낸 것처럼 그는 자유분방한 LA의 에너지를 음악과 절묘하게 융화시킨 지휘자의 명성을 얻었다. 97년 LA필에 의해 초연된 살로넨의 작품 ‘LA 변주곡’에는 이 도시에 대한 그의 애정이 녹아있다. 이 작품은 신인 지휘자로 처음 만난 도시에서 자신의 두 아이를 키우게 된 ‘서부 개척’의 찬가이기도 하다.

살로넨은 마지막 시즌 중 한국을 찾아 공연한다. 이달 18, 19일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에서 각각 공연하며,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28)이다.

로스앤젤레스=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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