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소프트파워 위기 맞은 중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멜라민이 베이징 올림픽을 집어삼켜 버렸다. 2001년 베이징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7년 동안 온갖 정성을 다해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멜라민 분유 파동으로 한 방에 와르르 무너졌다. 세계인의 축제가 끝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다. 올림픽 개최 성공으로 자부심에 잔뜩 부풀었던 중국은 이제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든 ‘불량식품 대국’으로 다시 한 번 오명을 떨치게 됐다.

국가 이미지 실추로 중국은 최대의 소프트파워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조셉 나이 교수는 소프트파워를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매력 또는 호감이라고 쉽게 설명할 수도 있는 이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은 그동안 절치부심해 왔다. 그 결정판이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경기장과 사회기반시설 확충 등에 쏟아 부은 공식 개최비용만 무려 430억 달러(약 56조원)에 달했다고 하니 그 염원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예에서 보듯이 소프트파워를 얻기는 어렵지만 잃는 것은 한 순간이다. 미국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미국에서 멜라민은 이라크전쟁이었다. 전쟁에는 승리했지만 평화를 얻지는 못했다. 이 무리한 전쟁으로 미국은 인심을 온통 잃어버렸다. 뒤늦게 미국은 선제 공격 등 일방주의와 군사력 사용을 강조한 기존의 방위전략 대신 국제 공조와 소프트파워를 강조하는 신방위전략을 발표했지만 구겨진 이미지를 되찾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2대 수퍼파워다. 지구촌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이들 국가가 신뢰를 잃게 되면 다른 나라들로서도 좋을 게 별로 없다. 최근의 미국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이제 지구촌은 세계화로 인해 공동운명체가 돼 가고 있다. 초강대국들이 흔들리면 공동의 번영을 누리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식품을 포함해 갖가지 상품을 생산·공급하고 있는 ‘세계의 공장’ 중국은 멜라민 파동을 하루 빨리 수습해 치명타를 입은 소프트파워를 조기에 회복해야 한다. 자국민은 물론 ‘차이나 프리(China free)’에서 자유롭지 못한 다른 나라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멜라민 파동을 교훈 삼아 소비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유제품을 공급해 달라고 강력히 주문했다. 그러나 이번 수습 과정에서 중국 당국이 보여준 태도엔 실망이 컸다. 분유 회사와 당국은 분유 오염 사실을 공식 발표하기 훨씬 이전에 미리 알았지만 즉각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이 사실을 은폐하고 사태를 방치한 것이다. 2003년 중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를 연상케 한다. 당시에도 당국은 숨기기에 급급했다.

멜라민에 오염된 분유 리콜 조치도 늦어 피해가 더 커졌다. 저질 분유를 수출한 나라에 정보 제공도 제때 하지 않았다. 쓰촨(四川)성 대지진 때처럼 신속하고 투명한 대책이 필요하다.

중국 식품에 대한 안전 우려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다시 어물쩍 넘어가면 중국의 소프트파워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먹거리가 걱정돼 중국 여행을 기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국에서는 2004년에도 가짜 저질 분유 사건으로 수십 명의 어린이가 희생됐다. 그때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엄격한 처벌,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불감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서는 중국이 진정한 강대국이 될 수 없다. 세계인의 공동 번영을 위한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일대 혁신을 기대해 본다.

한경환 국제부문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