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미국 대선에 이용된 보스니아 총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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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14일 치러진 보스니아 총선의 결과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사실 선거전에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모두가 인정하듯이 유권자 등록과정에서 광범위한 부정이 있었고,선거당일에도 절반정도의 투표소에서 국제 선거감시단원들이감시권밖에 방치됐다.
선거가 별다른 폭력없이 치러졌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껴 스스로 투표를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앞으로 보스니아에선 크로아티아계의 크로아티아 민주동맹(HDZ),회교도들의 민주행동당(SDA),세르비아계의 세르비아 민주당(SDS)등 3개 강경 민족주의 정당들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나라의 장래를 제각각의 생각대로 끌고나가게 될 것이다.
서방관리들은 이번 총선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고 말한다.그러나이같은 감상적 만족의 허구성은 봅 도울 후보가 미국의 대 보스니아 외교정책을 비판한데 대해 백악관이 보인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도울 후보는 최근 일련의 보스니아 평화과정을 보면 보스니아가 여러 민족이 화합하여 사는 사회로 돌아갈 것이란 희망을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이에 대해,마이크 매커리 백악관 대변인은 그러한 생각은 과거 극소수 고상한 사람들 이 만들어냈던 십자군운동과 같이 비현실적인 것이며,다행스러운 것은 미국내 여론이 이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이런 독선적이고 냉소적인 목소리가 클린턴 진영 안에서는 보편화돼 있다. 데이턴 평화협정은 보스니아를 파괴의 수렁에서 구해낸 탁월한 외교업적으로 칭송받고 있다.하지만 실제로 데이턴 협정은 보스니아를 종교별로 합법 분할함으로써 새로운 분쟁의 씨앗을 도처에 뿌려놓은 데 불과할 수도 있다.
데이턴협정이 만들어낸 보스니아 총선의 제반 상황들은 클린턴 대통령 자신의 선거일정이란 정치적 편의에 따라 갖가지 명분으로포장돼 이리저리 흔들렸다.
뿐만아니라 전범으로 지목된 라트코 믈라디치와 라도반 카라지치가 물밑에서 선거판을 좌지우지했으며,카라지치는 심지어 공개석상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보스니아 총선과정에서 드러난 느슨한 태도를 통해 미 행정부는이번 선거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밖에여기고 있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왜 3개 강경 민족주의 정당에 투표인 등록에 대한 독점권이 주어져야 했는가.지방자치선거조차 시행되기 힘든다고 모두들 공공연히 말하는 시점에서 왜 무리하게 전국적 총선이 강행되었는가.
왜 투표소에 충분한 선거 감시단원을 배치할 수 없 었는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이런 문제들을 차질없이 처리하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진정으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뛰어난 사람이라면 이같은 비판들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정리=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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