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베를린필 - 빈필. 2005년 첫 합동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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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세계 최고의 교행악단으로 자부하는 빈 필히모닉(사진위)과 베를린 필하모닉.

1984년 6월, 잘츠부르크 음악제 예술감독을 28년째 맡고 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이 음악제에 단골로 출연해오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대신 빈 필하모닉을 초청했다. 자신이 종신 예술감독으로 있던 교향악단에 '찬밥'대우를 하면서까지 빈필을 택한 것이다. 베를린 필과 카라얀 사이엔 감정의 앙금이 쌓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카라얀은 89년 지휘대에서 물러났다. 그는 몇달 뒤 타계했다. 베를린필과 빈필의 감정 싸움은 최근에도 불거졌다. 2002년 베를린필 예술감독에 취임한 사이먼 래틀(49)이 EMI 레이블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앨범을 녹음할 때 빈필을 택했기 때문이다.

카라얀 이래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여 오던 베를린필과 빈필이 21년 만에 화해의 무대를 꾸민다. 래틀은 최근 "내년 4월 2일 베를린필과 빈필의 합동 무대를 열기로 했다"며 "연주 실황은 유럽 전역에 생중계될 것"이라고 밝혔다.

합동공연 성사의 주역은 베를린필과 빈필을 넘나들며 지휘해온 래틀이다. 사실 두 악단 사이에 교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빈필 출신의 볼프강 슐츠(플루트).귄터 회그너(호른), 베를린필 출신의 한스요르크 셀렌버거(오보에).칼 라이스터(클라리넷)가 프리랜서 바순 주자인 밀란 투르코비치와 함께 목관 5중주단 '빈-베를린 앙상블'을 결성해 활동 중이다. 합동공연은 래틀과 그의 라이벌 다니엘 바렌보임(베를린 슈타츠오퍼 예술감독)이 서로 악수를 청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바렌보임은 2002년 당시 공석 중이던 베를린필의 차기 예술감독을 놓고 래틀과 다퉜던 지휘자다. 내년 공연에선 피아니스트로 출연해 브람스의 협주곡 제1번을 들려준다. 연합 오케스트라는 말러의 '교향곡 제6번', 쇤베르크가 관현악으로 편곡한 브람스의'피아노 4중주'등도 연주한다.

베를린필과 빈필은 모두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빈필이 보수적이지만 따뜻하고 우아한 사운드를 들려준다면, 베를린필은 다소 차갑지만 독주 악기의 기량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도회적 감각의 사운드를 살려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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