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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력 길러 주는 교육으로 자살 막아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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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06면

젊은 시절 자살을 세 번 시도했다는 김지하 시인. 그를 살린 것은 스승이던 김정록(1982년 작고) 서울대 미학과 교수였다. 청년 김지하는 김 교수에게 편지를 띄웠다. “죽고만 싶다”는 절박한 SOS였다. 며칠 후 김 교수에게서 답장이 왔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뜯었다. 10장이 넘는 장문의 글이었다.

시인 김지하의 생명론

“체관(諦觀·마음을 비우는 것)만이 해결의 길일세. 노자에게 배우게. ‘허(虛)’라는 것은 그냥 허무가 아니고, 진정한 용기의 근원이네. 노자의 『도덕경』을 당장 사서 읽고 또 읽도록…3분의 1도 읽지 못해 곯아떨어질 것이네.”

김 시인은 스승의 자상한 지도에 따랐다. 과연 그는 그날 밤 곯아떨어졌다.
“『도덕경』을 읽으면서 내가 고민하는 것이 실상은 아주 작은 것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나를 상대화하는 순간 불면증이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뒤 비로소 나는 죽음에서 해방됐다.”

그는 기자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자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 구절을 인용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그는 “마음을 열고, 자기를 비워야 내 옆에 있는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 삶의 의지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런 스승이 보이지 않는다. 기성세대의 책임이 큰데, 원로라는 이들 가운데 진정으로 청년을 사랑하는 자가 누가 있는가. 나를 포함해 하는 말이다. 대학생들이 한 달에 수십 명씩 자살하고 있는데….”

화제는 자연스럽게 1991년 큰 파문을 일으켰던 ‘죽음의 굿판’ 칼럼으로 옮겨졌다.

-‘죽음의 굿판’ 칼럼을 썼던 당시와 지금은 다른가, 같은가.
“다르다. 당시는 ‘민주열사’다 뭐다 해서 어마어마한, 긍정적인 명분을 자살에 씌워줬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회적 대의명분도 없이 죽음으로 몸을 던지고 있다. 어찌 보면 더 심각한 상황이다.”

당시 그에게 칼럼을 쓰라고 권유한 사람은 서울대 의대 정신과 이부영 교수(현재 명예교수)였다고 한다.

“이 교수가 ‘젊은이들을 사랑하느냐’고 묻더라. 그렇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어떻게든 그들의 죽음을 말리라’고 했다. 이삼십 년은 욕먹을 각오를 하고 치가 떨리도록 매섭게 쓰라고, 이해하지만 자중하라? 그런 정도로는 안 된다고 했다.”
김 시인은 이 칼럼으로 진보 문화운동 진영에서 비판을 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는 듯했다. 그는 최근의 자살 급증 현상을 우리의 민족성과 생명사상에 대비시켰다.

“원래 우리 민족은 일본과 달리 자살을 잘 안 하는 민족이다. 976번 외침(外侵)을 당하고도 버텼고, 끊임없이 저항했다. 강인한 민족성이다. 자살을 다른 사람을 죽이는 ‘타살’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자살공화국으로 변한 원인은 어디에 있나.
“사회 불안, 청년 실업, 가정 문제…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교육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내력을 키우는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 민족의 강인함은 (아래 턱을 가리키며) 격근, 음식물을 씹는 근육에서 나왔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을 보면 라면·국수 같은 유동식(流動食)이나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 식품만 먹는다. 격근이 발달할 수가 없고, 인욕(忍辱), 욕됨을 참는 힘이 생길 수가 없다.”

그는 우리 전통음악의 ‘시김새’를 인내하고 삭이는 힘으로 설명했다. 시김새의 사전적 의미는 ‘선율을 이루는 골격음의 앞이나 뒤에서 그 음을 꾸며 주는 장식음이나 짧은 잔가락, 꺾어지는 음’이다.

“임방울 같은 판소리 명창은 몇 년씩 거적 속에 들어가 춥고 외롭고 배고프고 아프고, 그런 걸 다 견뎌냈다. 예술의 힘은 예술적 재능뿐 아니라 세상을 헤쳐 나가는 힘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래야 진짜 소리가 나온다. 임방울이 심청가를 부르면 사람들은 배꼽을 잡으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슬픈데도 우습고, 즐거운데도 청승맞다. 이것이 카오스(Chaos) 시대를 맞아 세계 예술계가 주목하는 시김새의 힘, 한국 예술의 힘이다.”

문명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움직이는 상황에서도 미국과 유럽의 ‘짝퉁’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서 푼짜리 경쟁력 교육’이 우리 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게 김 시인의 시각이다.

“찰스 다윈의 약육강식 진화론은 틀린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상부상조 진화론이 이미 50년대부터 나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만날 경쟁 얘기를 한다. TV에서도 맹금류가 치고받고 싸우는 것만 보여 준다. 그것을 보고 애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적하는 것인가.
“그렇다. 초등학교 때부터 잠 안 재우고 쥐어짜고 비튼다. 자상하게 풀어 주면서 키 포인트를 알려주면 스스로 자기 인생관을 키워 나갈 수가 있는데, 흉내 내야 살고 외워야 산다는 식으로 아이들을 기른다. 그래서야 진짜 경쟁력이 생기겠나. 세상이 자기 것 같아야 할 젊은 시절에 자존심만 계속 무너뜨릴 뿐이다. 그러니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 자살하는 일이 일어난다.”

김 시인은 성(性) 문제도 주목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야동’과 광고 등을 통해 성이 상품화되면서 현대인은 하루 종일 성적 자극에 노출돼 있다. 이렇게 강한 자극이 지속되면서 역설적으로 성적인 힘은 떨어진다. 그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절망의 문화,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동기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해결책은 없나.
“상대를 존중하는 ‘모심’뿐이다. 호주의 생태학자 발 플럼우드가 이런 말을 했다. ‘인격-비인격, 생명-비생명을 막론하고 일체의 존재를 거룩한 우주의 공동 주체로 드높이는 모심밖에 없다’고. 모든 생명, 모든 존재에 ‘영성(靈性)’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생명의 핵심은 영성이다. 꼭 종교적인 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도 그 옆을 지나는 사람은 비명을 지른다. 서로의 영성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금융관계로 전락한 인간관계, 개성과 다양성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일자리 몇 십만 개’를 만들어 낸다는 식의 노동관계를 영성과 생명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최진실씨의 자살로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30~40대 주부에게 해줄 말이 없느냐고 청했다.

“여성은 생명의 근원이다. 앞으로 음(陰) 개벽, 여성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 열린다. 남성이 주도했던 이성 중심, 율법 중심의 세계가 아니라 감성 중심, 사랑 중심의 세계가 온다. 이런 희망을 갖고 살 것인가, 최진실 따라서 나도 가버리자고 할 것인가.”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 출생.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 졸업. 1970년 『사상계』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부패를 정면으로 비판한 풍자시 ‘오적’을 발표하면서 박정희 시대의 대표적인 ‘저항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74년 4월 체포돼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80년대 중반부터는 최제우·최시형·강일순 등의 민중사상에 터잡은 생명사상을 펼쳐왔다.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의 ‘로터스상’(1975년)과 국제시인회의의 ‘위대한 시인상’(1981년), 만해대상(2006년) 등을 수상했다. 현재 동국대·원광대 석좌교수. 지난 5월 타계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사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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