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민 분유 사죄 … 중국 도덕적 가치 지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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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국의 발전과 민족의 부흥이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려면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가치에 의거해야 합니다. 하지만, ‘싼루(三鹿) 사건’이 발생해 한국에까지 영향을 줬습니다.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의 대표적 철학자 탕이지에(湯一介·81·사진) 베이징대 교수가 최근 성균관대 초청 강연에서 한 말이다. 국제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는 중국산 ‘멜라민 분유’ 사태에 노학자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이날 강연의 주제는 ‘중국에서의 유교의 부흥’이었다. 강연 뒤 ‘중국에서 유학이 더 발전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일반적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그가 스스로 나서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식품에 쓴 ‘멜라민 분유 사태’를 언급한 것이다.

“올림픽 개최, 선저우 7호의 우주 유영 등은 중국인이 이룬 커다란 성취입니다. 하지만, 분유 사건은 도덕 품성에 있어 중국 사회에 아직도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탕 교수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중국의 전통적 도덕이 완전히 파괴됐다고 지적했다. 유가의 사상과 경전을 모두 부정한 ‘문혁’을 거치면서 도덕적 교화가 곤경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은 오랜 시간을 들여 도덕 관념을 다시 세워야 한다. 특히 관료들, 정치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도덕성을 갖췄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탕 교수는 중국 전통 사상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해 온 학자다. 21세기 중국의 새로운 가치를 유가문화의 ‘화해(和諧)사상’에서 찾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내세우는 ‘화해사회(=조화사회)론’의 핵심에도 유가 사상이 있다는 것이다.

탕 교수의 방한은 지난달 28일 열렸던 성균관의 ‘석전대제(釋奠大祭)’ 참관을 위해서다. 석전대제는 공자의 덕을 기리고 추모하는 유가의 중요한 행사다. 한국은 삼국시대 이래 지금까지 이 행사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에선 공산체제를 거치면서 맥이 끊겼다가 1980년대 후반에야 부활됐다. 당시 한국의 학자가 중국의 석전대제 감수를 위해 초청돼 ‘유교의 역수출’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의 석전대제에 처음 참관한 탕 교수는 “이렇게 장엄하고 성대한 석전은 처음으로 접했다. 규모나 규범의 측면에서 중국의 석전이 한국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평했다.

탕 교수는 중국의 대규모 ‘학술문화공정’인 『중화 유장(儒藏)』의 편찬 책임자이기도 하다. ‘유장’이란 유교의 대장경을 뜻한다. 불교·도교와 달리 유교 사상을 집대성한 경전은 없었다. 분량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글자수가 5200여만 자인데, 유장은 15억 자가 목표다. 유장 편찬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일본과 베트남 등 동남아까지 포괄하는 동아시아 사상계의 국제적 프로젝트다.

탕 교수는 이번 방한에서 ‘유장’에 포함될 한국 유학의 범위도 논의했다. 유장 편찬은 정화(精華)편(2억 자 분량, 2012년까지)과 대전(大典)편(15억 자 분량, 2020년까지)의 두 단계로 나뉜다. 탕 교수는 “한국 유학은 대단히 발전했다. 공자 사상에 대한 이해에서 중국 학자들이 많이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억 자 분량의 유장 정화편에서 한국 유학의 문헌은 2400만 자 분량이 될 예정이다. 일본 쪽 문헌은 1600만 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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