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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불도저식 단속에 미묘한 브레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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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적 단속으로 인한 민생 피해는 없도록 하라.”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경찰의 성매매 단속을 놓고 한 말이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경찰 안팎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단속을 살살 하라는 것이 아니다”며 “일명 ‘싹쓸이’식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영세업주들이 생계에 피해를 보는 등 부작용이 커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일단 경찰은 강력 단속 방침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이금형 여성청소년과장은 “대통령 말씀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해선 안 된다”며 “단속을 느슨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고, 법 절차를 준수해 단속 과정에서 인권 침해 같은 불필요한 민간 피해가 없도록 하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7월부터 대전 유천동 일대 단속으로 성과를 올린 대전 중부경찰서 황운하 서장도 이 대통령의 언급이 나온 바로 다음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성매매 단속이) 민생경제를 흔들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는 사회자의 지적에 “범죄이고 불법인 것을 가지고 생계·경제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건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 발언이 있기 전까지 경찰의 성매매 단속 강도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던 단속 때와는 전혀 달랐다. “성매매를 뿌리 뽑겠다”는 목표 아래 군사작전 하듯이 진행돼 왔다. 2000년 당시 서울 종암서 김강자 서장이 주도했던 성매매 전쟁에 이은 ‘2차 전쟁’으로 불렸다.

대전 중부서와 함께 ‘단속의 진앙지’로 불리는 서울 동대문서는 아예 성매매 영업을 할 수 없도록 마사지 업소의 욕조 등 관련 집기류를 압수해 버리는 방식으로 단속을 폈다. 동대문서 황병관 생활안전과장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단속에 나섰다”면서 “업주들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은 아예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경찰서도 늦은 밤 시간대에 이루어지던 단속 관행에서 탈피해 19일엔 오후 2시쯤 논현동 대형 안마시술소를 기습 단속했다. 전북경찰청에 이어 인천·대구·경북경찰청 등도 성매매 전담 팀을 꾸렸다. 단속에 투입된 경찰 병력 수는 유례가 없을 정도다.

전국 여성청소년계 1200명과 광역수사대 340명, 외근 형사 7600명, 경찰기동대 1700명 등 1만 명이 넘는 병력을 동원해 33곳의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수천 개의 성매매 업소 단속에 들어갔다. 경찰은 성매매특별법 발효 4주년을 맞아 이달 23일부터 10월 말까지 집중 단속을 벌일 방침이다. 이금형 과장은 “성매매 업소 집결지뿐 아니라 도심 상업지구 내 신·변종 성매매 업소에 대한 강력하고 상시적인 단속에 나선 만큼 성과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강력한 단속이 이어질지에 대해선 경찰 내부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몇몇 경찰 인사는 “대통령의 진의를 몰라 어느 선까지 단속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서울 강북지역 경찰서 생활질서계 관계자는 “전 지역에서 장안동 마사지업소를 단속하듯이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데다 대통령의 ‘민생 피해’ 언급에 경찰 수뇌부도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당혹스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방경찰청 한 간부도 “무차별 단속을 자제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대통령 언급이 있은 후 단속을 하더라도 숨 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장안동 등 집중 단속 지역 상인들이 “공포 분위기 조성으로 영업에 타격을 입고 있다”며 소송에 나설 태세를 보이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변수다. 일부 여성단체와 전·현직 경찰 관계자 사이에서 ‘단속 만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역시 경찰 수뇌부를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 집창촌 업주 모임인 한터전국연합 강현준(55) 대표는 “서울 강남 등지의 최고급 유흥업소와 룸살롱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매매는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면서 만만한 게 집창촌 단속”이라며 경찰의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그는 “대책 없이 무차별적 단속만 계속될 경우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된 주변 상인들은 물론 장기적으로 건물 임대가 안 돼 재산 피해를 본 건물주나 업주들이 최후 수단으로 경찰을 상대로 소송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단속에 동원된 일선 경찰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한 경관은 “밤잠을 못 자는 격무도 문제지만, 단속이 끝나는 10월 말 이후에는 또다시 성매매가 고개를 들 것이 뻔하다는 생각에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2차 성전(性戰)’이 성매매를 뿌리 뽑는 계기가 될지, 또 한 차례의 요란한 소동에 그칠지 주목되고 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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