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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렇죠] 약물 과민체질은 치료전 의료진에 알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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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에서 체질만큼 골치 아픈 존재도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자 때문인 만큼 후천적으로 노력해도 개선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물림된 체질 중 가장 폭발적이면서도 강력한 부작용이 바로 약물 과민체질입니다. 특정 약물에 과민한 체질을 타고나는 것입니다.

예컨대 페니실린 알레르기가 대표적 사례지요. 어느 정도 강력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최근 원로 법의학자 문국진 박사가 쓴 저서 '명화로 보는 사건'에 보면 복상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행위 직후 여성이 급사한 것이지요. 부검결과 여성은 심장병이나 고혈압 등 돌연사를 일으킬 만한 어떠한 소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인을 규명하지 못한 법의학자들이 고민 끝에 정답을 찾아냅니다.

여성은 평소 페니실린 과민체질을 갖고 있었는데 상대방 남성이 몸에 난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성의 혈액에 스며든 극미량의 페니실린이 정액을 타고 여성의 질에 침투했고 이것이 바로 페니실린 쇼크의 원인이었습니다.

페니실린 과민체질이 얼마나 무서운 지 실감할 수 있는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행여 페니실린 과민체질을 갖고 있는 여성이라면 성행위 전 남성에게 페니실린을 사용했는지 여부를 따져봐야할 정도니까요.

약물 과민체질은 용량과 무관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대개 약물 부작용은 투여량에 비례해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스피린을 많이 복용하면 위궤양이 잘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은 체질과 무관하게 보통사람에게 적용되지요.

그러나 약물 과민반응은 해당 체질을 타고난 사람에게만 나타나며 극미량이라도 쇼크 등 극단적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등 양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부작용과 다릅니다.

약물 과민체질을 가진 분들은 아무리 사소해보이는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체질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수첩 등에 메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응급상황 시 의료진이 자신의 과민체질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페니실린 이외에도 약물을 처음 복용하거나 주사한 뒤 피부발진이나 두드러기.어지럼증.발열 등 증상이 수시간 이내 나타나면 간과해선 안 됩니다. 이들 약물에 대한 과민체질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진통소염제와 항생제, 각종 검사 때 사용하는 조영제 등이 알레르기를 잘 일으키므로 환자와 의사는 함께 약물부작용에 유의해야 합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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