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4. 태권도의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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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판정에 불만을 품은 쿠바 선수가 주심을 발로 차는 일이 벌어졌다. 있어서는 안될 ‘악재’였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남으려면 더욱 노력해야 한다.

 태권도는 1994년 파리 IOC 총회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이 됐다. IOC 위원 투표에서 89-0, 참석 위원 만장일치였다.

73년 세계태권도연맹(WTF)를 창설한 지 불과 20년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태권도는 박진감 넘치는 타격전과 깨끗한 매너로 호평을 받았다. 올림픽에서 ‘차렷’ ‘경례’ ‘그쳐’ 등 한국말로 진행되는 종목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것이고, 스포츠 외교의 승리다. 한국에서는 태권도가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직접 태권도 경기장을 찾은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찬사를 보냈다. 자화자찬이 아니다. 그해 12월에 열린 IOC 집행위원회에서 태권도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다시 채택한 것도 그러한 평가에 기초한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태권도 선수는 출전한 네 명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어 한국의 종합 7위 달성에 효자 노릇을 했다. 종주국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한국은 남녀 총 8체급 중 4체급에만 출전한다.

그러나 생각하지도 못했던 악재가 잇따라 터졌다. 쿠바 선수가 주심을 발로 차고, 쿠바 코치도 부심을 때리는 등 40분간 난동을 부리는 장면과 중국 관중의 야유, 경기 중단 사태가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언론을 통해 “심판을 잘 때렸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중국과 영국 선수의 여자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으로 판정이 뒤집히기도 했다. 역시 중국 관중의 야유와 경기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나중에 기자들이 사마란치에게 태권도 문제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사마란치는 “태권도를 정식종목으로 넣을 때는 김(운용) 총재가 푸시, 푸시, 푸시해서 넣었는데 지금 IOC 안에는 태권도에 대해 부정적인 위원들이 있다”며 “그러나 이제 김 총재가 이전처럼 많은 일을 하게 되면 IOC 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 언론에 태권도가 퇴출 대상인양 보도됐기에 귀국한 뒤 평화방송에 출연, “태권도가 퇴출 대상은 아니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IOC 위원이 많으니 잘하라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94년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태권도가 정식종목이 될 때 나는 IOC 부위원장이었다. 그런데 베이징 올림픽 정식종목을 결정한 2004년 싱가포르 총회 때는 절반보다 2표 정도 많아 겨우 통과됐다.

IOC 위원 절반 정도는 반대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또 런던 올림픽에서 퇴출된 야구와 소프트볼이 재진입을 노리고 있고, 태권도와 같은 격투기인 가라테와 우슈가 맹렬히 로비를 하고 있다. 골프·럭비·볼링도 경쟁종목이다.

태권도가 정식종목에 남아 있으려면 이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 문제를 덮으려고만 하지 말고 세계의 인정을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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