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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평>32km서 과감한 승부 했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이봉주의 치명적인 약점인 스피드 부족을 한탄할 수밖에 없는 아쉬운 레이스였다.
일반적으로 마라토너들은 5천와 1만 등에서 스피드와 지구력을향상시킨 후 초장거리 레이스인 마라톤에 출전하는게 상례인데 이봉주는 특이하게도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정상급에 오른 선수다. 이봉주는 꾸준히 레이스를 전개하는 능력이 탁월한 대신 승부가 갈리는 막판 승부처에서 상대를 따돌리는 스퍼트가 약한 단점이 있다.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언덕달리기와 단거리 질주를집중적으로 실시했으나 애틀랜타의 무더위로 소진된 체 력은 메인스타디움까지 이어진 최후 스퍼트 싸움을 더이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32㎞지점에서 승부를 걸었을 때 왜 좀더 과감히 거리를 벌리지 못했을까 하는 대목이다.여기서 바짝 페이스를 당겨주었다면 기록면에서 이봉주에 비교가 안되는 투게인이나 와이나이나가 마지막까지 따라붙어 부담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도자 입장에서 이봉주의 스퍼트 실패는 마지막 파트너였던 투게인의 존재를 전혀 예상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상대의 기록이나 레이스 스타일,레이스 운영능력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도박과 다름없는 스퍼트를 감행하기에는 올 림픽 무대가너무나 컸고 이봉주는 이 중압감을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봉주가 따낸 은메달은금메달과 진배없는 가치를 지닌다.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제패했던 마라톤 한국의 전통을 꿋꿋이 이었고 황영조가 은퇴하면서 빚어진스타부재의 위기에서 한국마라톤을 완벽하게 건져냈기 때문이다.
이봉주는 지금까지 이룩한 성적도 놀랍지만 앞으로 더욱 기대를걸어볼만한 보기 드문 재목임에 틀림없다.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그의 기량은 절정에 달할 것이고 이때쯤이면 다시한번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약점이 분명하고 수정할 시간이 충분한 만큼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더욱 완벽한 마라토너로 변신한다면 한시대를 풍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기만성의 재목이 바로 이봉주다.
정봉수 코오롱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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